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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Jan 26. 2020

아들아,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영조와 사도세자

아빠가 쓰는 위인전


 어느 나라에나 그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있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라 부르고 또 직접 뽑는 시대이지만, 조선이라는 왕조국가였던 20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임금님이 우리나라를 다스렸고, 후계자도 아들이 되었단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인물이 임금님과 그 후계자인 세자였어.     


 그런데 임금님과 세자가 아빠와 아들이었다고 해도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던 사례는 정말 많았어. 당장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아들 태종 이방원이 그랬고, 태종 이방원과 세자 양녕대군도 사이가 좋지 못했어.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결국 쫓겨나기도 한단다. 선조는 광해군이 서자라는 이유로 늘 노심초사하게 만들었고, 소현세자는 심지어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을 당했다는 의혹도 있단다. 아무리 아빠와 아들이라 해도, 그들은 각각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었기 때문에 권력 앞에서는 매우 비정했거든. 하지만 조선시대 가장 비극적인 부자 관계를 보여준 인물은 누가 뭐래도 영조와 그 아들 사도세자였다고 생각해.     


 임오화변. 아빠가 아들을 뒤주라는 큰 상자 속에 가두어 버리고, 굶어 죽게 만든 사건이야. 상상이 가니? 이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영조와 사도세자였어. 도대체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처럼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도세자는 영조가 마흔 살이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이었어. 더구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가 7년 전에 이미 병으로 죽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영조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아빠도 우리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그 기쁨을 생생히 기억해. 영조는 기쁨이 매우 컸던 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도 정말 컸단다. 사도세자가 겨우 세 살이 되자 교육을 시작해. 교육열이 엄청 뜨거웠던 영조는 직접 아들을 위한 교과서를 쓸 정도였어. 경전에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만 손수 추려서 책을 엮기도 하고, 세자에게 직접 내리는 교훈을 책으로 만들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그것도 임금님이 아들을 위한 교육서를 직접 만들 정도라니! 영조의 교육열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돼. 사도세자 또한 기대에 부응해서 어릴 때부터 영특한 자질을 보였다는구나.     


 그런데 만약 아빠가 너 세 살 때부터 억지로 글자를 가르치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면 넌 어땠을까? 엄마 아빠, 또는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자꾸 공부만 강요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게다가 영조는 종종 세자를 불러서 공부한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는 했는데, 대답을 머뭇거리면 엄하게 꾸짖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영조를 세자는 점점 무서워하고 위축되어 갔지. 점점 커져만 가는 영조의 기대가 너무 부담스럽기만 했고, 그렇게 자신감을 잃어갔던 사도세자는 훗날 마음의 병까지 얻게 돼. 종종 불안과 초조함을 호소하고, 천둥소리만 들어도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구나. 또 옷을 입으면 아버지를 뵈러 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의대증이라는 병까지 걸려. 자신에게 옷을 입혀주던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까지 했다고 하니,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갔을까.     


 이 비련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아갔던 것은 당시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인 갈등이었어. 이 시대에는 신하들이 서로 당파를 맺고 경쟁이 치열했던 때야. 나는 누구 편, 너는 누구 편 이렇게 서로 세력을 형성하고 싸우기에 혈안이 되었던 거지. 지금도 여러 정당들이 있어서 정책 경쟁을 통해 서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지만, 이때의 당파 경쟁은 지금보다도 훨씬 치열했단다. 이 당시 집권여당은 노론, 야당은 소론이라 불리는 당파였어. 그런데 문제는 사도세자가 힘이 셌던 노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는 거야.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대리청정을 실시해. 군사권이나 인사권처럼 매우 민감한 권한을 제외한 나머지를 세자에게 넘기고 나라를 통치하도록 한 것이지. 그런데 이때 마침 소론의 일부 강경파가 영조와 노론을 비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영조에게도 큰 충격을 주게 돼. 노론은 이번 기회에 소론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자고 끊임없이 세자에게 요청을 하지만, 세자는 그때마다 거절해. 노론의 미움을 사게 된 거지. 그리고 사도세자 또한 노론의 공격 대상이 되어버린단다.     


 노론은 세자가 영조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뒤집으려 하고 있다는 모함을 해.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갈라놓으려고 한 거야. 아들에 대한 실망이 커져가던 영조는 자신의 처소도 세자가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게 돼. 이미 멀어지기 시작한 부자 사이는 서로 얼굴을 볼 기회마저 줄어든 거야. 심지어 몇 달 동안 만나지 않기도 했고, 소통은 완전히 끊겨 버렸어. 더 벌어진 간격의 틈 사이로 둘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려는 세력의 이간질도 더 심해져. 서로 대화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 그것은 이미 파탄이 난 부자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었어.     


 마침내 임오화변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기 20여 일 전. 나경언이라고 하는 자가 사도세자를 참소하는 일이 발생해. 세자가 정신병 때문에 궁녀를 죽이고, 영조의 허락도 없이 궁궐을 빠져나가 평양에 놀러 나가는 비행을 저질렀다고 얘기한 거야. 더 심각한 것은 세자가 역모를 꾸몄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지. 얼마 전 세자가 자신을 저주했다는 의심도 갖고 있던 영조는 이 사건이 발생하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해. 세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나경언의 참소도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끝내 세자의 말을 믿지 않아. 그리고 스스로 죽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것이 바로 임오화변의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야.     



 아들을 무척 사랑했던 아버지 영조.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빠의 지나친 기대와 꾸지람. 그런 아빠를 무서워하고 반항하기 시작한 아들.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탐한 신하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아빠는 그 핵심에 “소통의 단절”이 있었다고 생각해. 영조는 사도세자를 엄하게 나무라고 꾸짖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헤아려 본 적이 없어. 사도세자도 그런 영조를 무서워해서, 나중에는 병을 핑계로 몇 달간 얼굴조차 보러 가지 않게 된단다. 철저히 대화가 단절된 둘의 관계 끝에는 한없는 의심과 미움만 남게 된 거지. 급기야 세자가 역모를 꾸민다는 엄청난 참소에도, 세자의 항변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결국 죽음까지 몰고 가게 된 것이란다.     


 아들아,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너를 나무라고 꾸짖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혹시 네가 잘못을 한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주도록 노력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한 가지는 꼭 약속할게. 어떤 상황이어도 아빠는 우선 너의 말을 경청할 거야. 네가 왜 그랬는지, 너의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들어본 다음 판단을 내릴 거야. 아빠가 너에게 하는 말보다, 너에게 듣는 말이 더 많도록 노력할 거야.     


 너 또한 아빠의 말을 단지 잔소리로만 여기지 말고, 잘 경청해 주기를 바라. 소통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다.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게 함’이라는 소통의 의미처럼,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소통이란다. 아빠가 너의 입장을 헤아리도록 노력하는 만큼 너 또한 아빠의 생각을 잘 헤아려주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함께 대화를 많이 하도록 애쓰자.     



 네가 나중에 학교를 들어가고, 직장을 갖게 되고,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관계를 맺게 될 거야. 그중 어떤 사람은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 만약 그 사람이 네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를 너무 힘들게만 한다면 그냥 얼굴을 안 보는 게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에게 정말 소중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소통과 대화의 끈은 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더 이상 그 사람과 소통이 없게 된다면, 그 관계는 정말로 끝나게 될 거야.     


 하물며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그럴 텐데, 세상에서 누구보다 소중한 관계인 너와 부모 사이에서 소통과 대화는 더더욱 중요하겠지? 함께 살다 보면 분명 아빠에게 서운한 날도 있을 거야. 반대로 아빠가 너에게 서운한 순간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순간일수록 우리 더 많이 대화하자. 서로의 생각이 어떤지, 혹시 어떤 서운함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얘기하자.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서 노력이 필요해.


 세상에 누구보다 대화를 많이 하는 아빠와 아들이 되자. 지금은 아빠가 좀 더 바쁘니까, 아빠가 더 노력해서 너와 시간을 갖도록 할게.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네가 아빠보다 좀 더 바빠지면, 아빠와 시간을 갖도록 네가 좀 더 노력을 해주렴. 그렇게 함께 노력하자. 사랑한다, 아들.



# 오늘 아빠의 다짐

 -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아들과 대화를 많이 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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