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짜리 지폐를 보면 멋진 모자를 쓰고 계신 분이 그려져 있어. 이이 선생님이라는 분이야. 나라에서 발행하는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졌을 정도면, 정말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기신 분이겠지? 실제로 그 분은 뛰어난 정치가이면서, 학자이기도 하셨단다. 아빠가 처음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은 인물은 율곡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이이 선생님이야.
이 분은 어릴 때부터 무척 총명해서 천재라는 명성이 자자했어. 세 살 때 외할머니가 석류 열매를 보여주면서 무엇같냐고 물어보니, 옛날 시를 인용하면서, “부서진 빨간 구슬을 껍질이 싸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다는구나. 세 살이면 보통 아이들은 이제 겨우 입을 떼기 시작하는 때인데, 그때 이미 글까지 익혀서 자기표현에 사용했다니, 정말 놀랍지?
무엇보다 이이 선생님이 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구도장원공(九度壯元)이라는 별명 때문이야. 이게 무슨 뜻이냐면, 9번의 국가 공무원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을 했다는 말이거든. 지금도 공무원 시험은 합격하기 정말 어렵단다.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더 경쟁이 치열했던 옛날에 9번이나 1등을 놓치지 않았다니, 이 분은 정말 천재였던 게 맞는 것 같아.
아빠가 이이 선생님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아들도 어서 글을 깨쳐서, 많은 책들을 읽고 글도 쓸 줄 알게 되길 바라서? 혹은 어릴 때부터 무척 공부를 잘 해서, 나중에 크면 행정고시를 1등으로 합격하고 장관도 되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에? 물론 자기 자식이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모든 부모의 욕망이지만, 그것 때문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야. 아빠가 생각했던, 이이 선생님에게 배울 부분은 다른 곳에 있어.
이이 선생님은 16살이 되던 해, 큰 충격을 받는 일을 겪게 돼.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신거야. 마침 출장을 갔던 아버지를 따라, 여행을 떠난 사이 갑자기 돌아가신 바람에 옆에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도 보지 못했어. 아직 어린 나이에 닥친 이 불행에 그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단다. 그리고 불교에 흥미를 갖게 돼. 일단 흥미가 생기니, 불교에서 얘기하는 진리를 찾아보고자 아예 금강산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해버려. 이이 선생님이 살았던 당시는, 유교가 국가 통치 이념이었고, 유교에서 발달한 학문인 성리학만이 올바른 사상이었어. 그래서 한번 불교를 따르게 되면, 영원히 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는 것이었단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경험을 쌓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자 용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지.
그렇게 1년 동안 오로지 불교에 정진하며 진리를 탐구하게 돼. 하지만 불교의 교리로는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되고 산에서 내려오게 된단다. 그리고 다시 예전에 읽었던 유교 서적을 꺼내어 읽으며 더 깊이 있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고 해.
이이 선생님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이황 선생님이란 분과 함께 가장 뛰어난 성리학자로 불리는 분이야. 그런 명성을 얻게 되기까지 단순히 공부만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란다. 그 분은 더 많은 것을 알고 깨닫고 싶어서 전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기로 스스로 결단했지. 그리고 1년 동안 오로지 그것에만 몰두하며 살았어. 마침내 이게 아니었구나 라는 결론을 내린 것도 이이 선생님 그 자신이었어. 이런 경험을 스스로 얻게 되는 과정을 통해, 훗날 더욱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거야.
아들아, 장래희망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에 앞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거라. 네가 미치도록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마음껏 글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춤도 열심히 춰보아라. 그것에 대해 정말 제대로 경험해보고, 그러다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주저말고 또 다른 경험에 도전해 보거라. 혹시 중간에 그만 두게 되더라도 그 결심 또한 너의 의지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그 시간들 또한 결코 헛되게 낭비한 것이 아닐 거야. 오히려 그 많은 경험들이 차곡차곡 네 안에 쌓여서, 언젠가 너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줄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빠가 비록 재벌은 아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너를 정말 잘 키워내고 싶다. 네가 갖고 싶은 것들 모두를 갖게 해주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이 남을 해롭게 하거나 너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일만 아니라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게 해주고 싶어. 아빠는 너에게 비싸고 좋은 물건보다는 값진 경험을 사주고 싶다.
그러니 아들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아빠에게 얘기하거라. 그러면 아빠는 네 엄마와 충분히 상의해서 최대한 지원할거야. 아빠가 시켜서 억지로 다니는 태권도 학원이 아니라, 정말 네가 배우고 싶어서 다니는 태권도 학원이 되길 아빠는 바란단다. 혹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아빠에게 물어본다면, 아빠도 함께 노력해서 고민해 볼 거야. 하지만 그 마지막 결정은 네 스스로 내리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네가 어리니 아빠가 옆에서 도와주겠지만, 그렇게 너 스스로 결정하는 연습을 아빠랑 함께 많이 해보자꾸나.
오늘 이이 선생님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땠니? 정말 대단한 분이지? 아빠는 너에게 그분만큼 천재이기를 바라지도, 공부를 엄청 잘 하기를 바라지는 않아. 다만 이것도 배워보고, 저것도 배워보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간 그 분의 자세만큼은 꼭 배우도록 하자. 아빠도 우리 아들이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고 응원할게. 사랑한다, 우리 아들.
# 오늘 아빠의 다짐
- 아들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좋은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것을 우선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