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위인전
얼마 전, 유치원 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온 네 엄마가 하는 얘기를 듣고 괜히 좀 조바심이 났던 적이 있어. 네 또래 아이들은 벌써 글자도 읽고 쓰기도 하는데 넌 남들보다 좀 느려 보인다는 거야. “다른 애들은 그렇다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괜히 신경 쓰이는 거 있지? 아,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모구나 싶더라.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가 있어. 대통령을 잘 보좌해서 정부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 조선시대에는 국무총리의 역할을 했던 분을 영의정이라고 불렀단다. 임금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모든 신하를 통솔하는 영예로운 자리지. 그런 만큼 당연히 정치를 해본 경험도 많고, 나이도 꽤 있는 연륜 있는 분들이 주로 임명이 되었겠지.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을 지낸 것으로 유명한 황희 정승이란 분도 69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영의정이 되었단다. 조선시대에 벼슬을 했던 신하라면 모두가 선망했던 영의정. 그런데 겨우 28살의 나이로 영의정이 되었던 분이 있어. 그 당시 또래들보다 최고로 빨리 앞서 갔으면서, 조선시대 통틀어 가장 젊은 영의정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긴 인물 구성군 이준. 오늘은 그분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해.
이 분의 이름 앞에 굳이 구성군이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그가 왕족이기 때문이야.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이었던 임영대군의 아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성품이 대범하고 무예에 뛰어났다고 하는구나. 17세에 무과에서 장원급제를 했다고 하니, 확실히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아. 한편 큰아버지인 세조가 조카 단종을 쫓아내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이 되자 그 과정에서 공을 세운 많은 신하들이 공신이 돼. 공신들이 많아지자 그들의 세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세조는 왕족들을 기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해. 그 왕족들 중에서도 세조의 눈에 특히 들었던 구성군도 등용이 되는데, 그 계기는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반란 때문이었어. 지금으로 치면 이제 막 취업을 시작할 나이인 27세에 불과했던 구성군을 단번에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거야. 어린 나이에 반란을 진압해야 하는 중책을 맡지만, 그는 통솔력과 전술 능력을 발휘하며 멋지게 반란을 평정해. 세조는 당연히 크게 기뻐했고 구성군을 이전보다 더욱 신임하게 된단다. 더욱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왕족이 직접 나서서 진압했으니, 왕권 강화의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을 거야.
이후 그의 출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어. 그는 곧바로 병조판서와 오위도총관에 임명이 되는데,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을 겸직하는 자리야. 나라의 군사를 통솔하는 실권을 모조리 그에게 맡긴 거지. 그리고 그다음 해 28세의 나이로 마침내 최고 높은 관직인 영의정에 임명이 된단다. 세조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엄청나게 빠른 출세. 그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했으니, 앞으로 그의 인생은 쭉 평탄대로만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영의정이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입지도 흔들리게 돼. 세조의 아들로 왕이 되었던 예종 또한 1년 만에 요절하고 13살의 어린 성종이 즉위하게 된단다. 세조가 견제하고자 했던 공신들은 현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원상이라는 명목으로 실권을 장악해. 그리고 본격적으로 구성군을 견제하더니, 어떤 신하가 그를 ‘왕이 될 재목’이라 말했다는 이유로 역모죄에 엮는 바람에 억울하게 귀양을 가게 된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외로운 귀양생활을 10년 동안 하다가 결국 38세의 한창나이로 죽게 된단다.
구성군이 결국 쫓겨나고 말았던 것은 그가 왕족을 대표하는 정치적 거물이라 공신들의 극심한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야. 불과 얼마 전에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되었었기 때문에, 구성군이 똑같이 어린 조카 성종을 쫓아내고 왕이 될까 우려했던 거지. 어쨌든 왕권의 강화를 위해 전격 기용되었던 이준은 역설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쫓겨난 셈이 된 것 이란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지되었던 500년이란 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젊은 나이에 영의정이 된 구성군 이준. 그렇게 초고속으로 출세를 거듭하자 분명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부러움 혹은 시샘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을 거야. 조선시대 당시 완전 핵인싸였던 셈이지. 하지만 그가 영의정에 오를 만큼 충분한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었는지, 그 자리에 걸맞은 인물이었는지는 아빠도 좀 의문이야. 그가 보여준 구체적인 업적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것뿐이었거든. 어쨌든 그것이 군사적으로 대단한 업적이었으니, 국방부장관인 병조판서가 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모든 국정 전반에 대해 세세하게 잘 알고 챙겨야 하는 영의정에 바로 임명이 된 것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지는 않았을까? 영의정으로서 실력을 쌓기에 경험도 매우 부족했을 테고, 오히려 다른 공신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 되잖아. 구성군은 세조의 지나친 총애와 기대 덕분에 빠른 출세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도유망했던 그의 미래를 망쳐 버린 것은 아닌가 아빠는 그런 생각도 들어.
오늘 아빠가 들려준 구성군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이 점인 것 같아. 네가 그동안 들여온 노력과 땀, 시간과 경험에 비해서 너무 과분한 대가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정말 네 것이 맞는지 한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거야. 이 세상에 아무런 노력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어. 또는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노력 이상으로 주어진 대가는 언제든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거라. 충분히 성숙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빠른 속도로 높이 올라가기만 한다면, 결국 더 빠르게 추락하고 말았던 사례를 역사는 너무나 많이 보여준단다. 반대로 오랜 시간 동안 내공을 단단하게 다진 사람은 당장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 진가를 드러내게 돼.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탑골지디’라는 애칭으로 유명해진 가수 양준일씨만 봐도 그렇지 않니?
아빠는 네가 잘 되고, 성공했으면 좋겠다. 성공이란 것이 꼭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냐. 네가 꿈꾸고 원하던 삶을 마침내 성취해낸다면 아빠는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이 꼭 빠른 성공일 필요는 없어.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남들과 너를 함부로 비교하지 말고 네가 옳다고 믿는 길을 열심히 걸어가도록 하거라. 많은 경험을 차곡차곡 쌓고, 너의 내공을 단단히 다지면서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네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가거라. 조금 느리게 간다 해도 괜찮아. 남보다 빨리 앞서 가지 못한다 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빨리 간다고 해서 그 결과도 반드시 좋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러니 아들아, 너무 빨리 가는 것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처음에 얘기했던 그 유치원 선생님의 상담 이후, 아빠가 좀 조바심이 났었다고 얘기했지? 하지만 옛날 역사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아빠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단다. 너는 천천히 가고 있을 뿐이지, 결코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널 열심히 응원해 주자고 말이야.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긴 명언을 함께 곱씹어보며, 오늘의 얘기를 마치도록 하자. 사랑한다, 우리 아들.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뒤로 가지는 않습니다.”
# 오늘 아빠의 다짐
- 아이가 느리게 간다고 해서,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