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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Feb 16. 2020

아들아, 너 스스로 한계선을 긋지 말거라–김만덕

아빠가 쓰는 위인전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선생님이 네 짝궁만 사탕을 주고 너에게는 주지 않는거야.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그 친구를 더 편애해서 그랬다면 당연히 넌 속상하겠지? 아마 ‘차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거야.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차별을 당연시하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그저 세상에 태어나보니 힘없고 신분도 낮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차별을 겪게 되었어. 아마 마음속으로 울분은 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순응하며 살게 될 거야. 그 사회의 굳어진 체제와 대다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인식에 홀로 저항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그런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던 분들도 있었어오늘 아빠가 소개해 주고 싶은 김만덕이란 분은 그런 분들 중에서도 특히 차별받는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이었단다.   

  


이 분은 단언컨대 아싸 중의 아싸라고 할 수 있어. 우선 그녀의 고향이 조선에서도 가장 변두리였던 제주도였어. 지금이야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예전만 해도 농사를 짓기에 환경이 척박하고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종종 발생해서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었어. 먹고 살기가 힘드니 떠나려는 백성들이 많아서, 아예 정부는 섬을 나가지 못하도록 뱃길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단다. 반대로 중앙정부에서 중죄를 지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유배를 많이 갔는데,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단다. 거대한 감옥과 같은 땅김만덕은 차별받던 땅 제주도에서 태어난 거야.     


그녀는 원래 양반의 딸로 태어났지만, 12살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가 돼. 갈 곳이 없는 그녀를 수양딸로 받아준 사람은 한 나이든 기생이었어. 그녀는 원래 관아에 소속된 기생, 즉 관기였는데 김만덕에게도 관기 훈련을 시킨단다. 노래와 춤, 악기 같은 기예에 재능이 있는 것을 보고 관기로 등록을 시켜. 관원들의 수청을 들고, 지방 향족들의 연회에도 참석해야 하는 관기가 된 것인데 노비처럼 가장 낮은 신분의 천민으로 격하된거야.

    

제주도 출신 여성에, 조실부모한 고아, 천민으로 몰락한 관기.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차별을 겪어야 했던 당시 시대에, 이처럼 김만덕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은 하나같이 벅찬 것들이었어. 하지만 김만덕은 자신의 처지에 비관만 하지 않고씩씩하게 살아나갔어. 특히 악기 다루는 솜씨가 좋아서 그녀의 명성도 점점 커져갔다고 해. 지금으로 치면 유명 연예인이 된거지.      


관기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로서 50세가 되기까지 관청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어. 다만 그녀는 양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관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느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가능했단다. 그러면 적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겠지. 하지만 김만덕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았어. 그것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있는 삶일 뿐일 테니까. 그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로 결심했단다.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면 인기있는 기생으로서, 또는 양반가의 소첩으로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었겠지만, 김만덕은 그렇게 하지 않아. 그녀가 스무살이 되던 해, 관청의 수령을 찾아가서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관기가 된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신분을 환원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해. 관기는 관청의 중요한 재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절당했어. 하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관기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양인이 된단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거야.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을 다시 원복시킨 거야. 이후에도 양반과 결혼해서 좀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는 많았겠지만, 그것을 마다하고 그녀가 택한 길은 놀랍게도 사업, 즉 장사였어. 보통의 남성들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사업가의 길을그녀는 당당히 선택한거야그녀가 살았던 18세기는 상업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유통망도 크게 발전하고 있던 때야. 이런 시대적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에 과감히 사업가의 길을 도전해 보기로 한거지. 그녀는 기생이었던 시절의 경험을 십분 살려 사업가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단다. 제주도의 양반층 부녀자들이 좋아할만한 육지의 옷감이나 장신구, 화장품 등을 가져다 팔고, 제주도 특산물인 녹용이나 귤 등을 육지에 팔아 많은 시세 차익을 얻게 돼. 그녀의 과감한 선택은 마침내 성공했고, 제주도에서 남 부러울게 없는 부자가 된단다. 물론 관기로 활동하던 시절 갖게 되었던 많은 인맥도 적절히 활용했을 테고, 그녀의 성실함도 한 몫 했겠지만 무엇보다 시대상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없었다면 그런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 같아.     

고아출신의 불쌍한 기생에서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의 극적인 변신. 이것만 해도 조선이란 나라에서 일궈낸 대단한 성취였지. 하지만 그녀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생기는데, 제주도에 큰 흉년이 발생한 거야. 무려 제주도민의 1/3이 굶어죽고, 당시 임금님이었던 정조가 구휼미를 보내지만 쌀을 실은 여러 척의 배가 그만 침몰해버린 절박한 상황이었단다. 이때 김만덕이 평생 모은 재산으로 쌀을 사서 백성들에게 나눠줘그토록 힘들고 악착같이 모은 재산이었을텐데,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선뜻 내놓은거야. 결국 그녀의 의로운 선행 덕분에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되었어.     


김만덕의 의로운 행동을 전해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정조는 그녀에게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봐. 그녀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둘러 보는게 소원이라고 얘기하지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에 가보는 것, 세계일주를 가보고 싶은 정도의 꿈이라고 할까? 평생 섬 밖을 나갈 수 없었던 당시 제주도 백성으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었단다. 특히 여성은 육지 사람과 결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였어. 하지만 정조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 주게 돼. 당시 여성이 오를 수 있는 최고 명예직인 ‘의녀반수’에 임명해서 궁궐에도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주고, 금강산을 유람할 수 있는 노잣돈을 지원해 준단다. 당시 금강산 유람은 양반 남성들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여행이었어. 하지만 김만덕은 제주도 출신의 여성으로서 그 경계를 마침내 넘어버린 거야.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해봐. 수많은 소원들이 있었을텐데, 왜 그녀는 하필 “금강산 유람”을 소원으로 얘기했을까? 당시 조선시대 여성은 집밖으로도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존재였어. 항상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만 살아야 했던 거야. 거기에다 제주도 사람은 섬을 나가는 것 마저 허락되지 않았지. 집 밖을 나서고 제주도라는 섬을 벗어나, 당시 양반 남성들에게도 평생의 소원이었던 금강산 유람하는 것을 상상해보며 김만덕은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을 제약하고 있는 한계와 금기, 그 선을 과감히 벗어나보는 꿈 말이야. 비록 온갖 차별을 받으며 자라야 했지만그 차별을 결코 당연시 하지 않고 시대적 한계를 스스로 넘어보고 싶었던 꿈그 상징적인 공간이 바로 금강산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한 시대를 바꿔놓은 혁명가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것 같아. 비록 천한 신분의 기생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그녀의 일대기를 쓴 『만덕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     


만덕은 비록 머리를 숙이고 기녀 노릇을 할망정 기녀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세상은 그녀에게 기생이라는 지위를 부여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했지만그녀 스스로는 기생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았어. 그녀는 자신이 갇혀 있는 출신지의 공간, 여성으로서의 공간, 천한 신분인 기생으로서의 공간 안에 갇힌 채 자신의 삶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거라 체념하지 않았던 거야. 대신 자신을 가두어 놓은 유리벽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깨트리고자 하는, 도전의 연속인 삶을 살았단다. 양반 남성들도 이루기 어려운 사업적 성공, 대규모 구휼, 그리고 임금님의 상과 금강산 유람, 이 모든 것을 김만덕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낸거야. 혹시 그녀가 이런 성공을 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런 도전을 스스로 결단하고 한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거야.      



아들아이 세상에 있는 수십억명의 사람들 모두는 그 처한 환경이 제각각 다른 만큼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차별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단다안타깝지만 이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시작부터 훨씬 앞선 출발점에 서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기 힘들 수 있어. 어떤 사람은 당연히 갖고 있는 신체적 건강함을, 어떤 사람은 갖지 못했을 수도 있어. 타고난 성별, 출신지, 인종, 학벌, 가문, 재산, 신체적 특징 등등 온갖 이유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차별을 겪을지 모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이란다.     


서커스단에서는 어린 코끼리를 아주 작은 말뚝에 밧줄로 묶어둔다고 해. 말뚝에 묶인 새끼 코끼리는 힘이 약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밧줄을 끊거나 말뚝을 뽑을 수 없으니, 탈출을 포기하게 된다고 하지. 그리고 나중에 훨씬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져도 탈출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코끼리처럼 현실적인 벽에 부딪친 경험 때문에, 혹은 차별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순응하며 살게 될지도 몰라. 아들아, 분명히 너에게도 언젠가는 부딪치게 되는 현실의 벽이 있을거야.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조선시대 여성에게 집 밖은 혼자서 함부로 나갈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특히 제주도 여성에게 섬 밖은 절대 나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집 밖을 나서고 제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꿈꿨던 김만덕처럼너도 지금의 현실을 넘는 꿈을 꾸길 바라모두가 기생이라며 무시했고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기생이라 자처하지 않았던 김만덕처럼너 스스로 먼저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 갇혀 있지 말거라. 네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계가 딱 저만큼이라 여긴다면, 정말 갈 수 있는 곳도 딱 그 정도가 될 거야. 네가 꿈꾸는 공간의 크기만큼, 네 미래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공간도 훨씬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아들아, 너의 미래와 가능성도 너무나 무궁무진하단다. 너 스스로의 가능성을 굳건히 믿고  한발자국 더 멀리 내딛어 보도록 하자. 아빠도 네 곁에서 항상 응원할게. 사랑한다아들.     



# 오늘 아빠의 다짐

 - 아이가 꿈꾸는 미래에 한계선을 긋지 말자. 세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얘기해도, 격려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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