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는 정당이라는 것이 있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 즉 정권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 서로 비슷한 생각과 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를 말해. 우리나라에는 수천만명의 국민들이 있다 보니 서로의 생각이나 이해관계도 모두 제각각이겠지? 그래서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정당을 통해 표현한단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출마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거야. 그래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정당 발전의 수준도 높다고 볼 수 있어.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정당과 비슷한 것이 있었어. 그때는 붕당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 사대부들이 사상과 이념에 따라서 저마다 당파를 만든 거야. 서로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정치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는 지나친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는 부작용도 있던 것은 사실이야. 서로 모함하거나 심지어 역모죄라는 누명을 씌워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기도 하거든. 그래서 아빠가 처음 너에게 소개해 주었던 율곡 이이라는 분은 붕당의 출현을 크게 걱정하고, 그것을 막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 붕당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가 뭔지 아니? 조금은 어이없게도 편견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이었어. 오늘은 조선시대 붕당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김효원과 심의겸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
김효원은 벼슬에 오르기 전부터 청렴하고 학문 실력이 뛰어나서 명성이 높았던 선비였어. 그런데 가정 형편이 워낙 어려웠던 것 같아. 그 당시 권력가였던 윤원형의 집에 처가살이하고 있던 이조민이라는 사람과 친해서, 그 집에 잠시 신세를 지기도 했나 봐. 그래서 윤원형의 집에 자주 들락날락했던 거지. 그런데 윤원형에게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들렀던 심의겸이 김효원과 딱 마주친 거야. 김효원은 심의겸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돌아온 반응이 그를 무안하게 만들었어.
“그렇게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나신 선비를 이 집에서 보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휙 돌아서서 가버린 거야. 사실 윤원형은 당시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반대파 사람들을 많이 죽이기도 하고,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거든. 어떻게 그런 사람의 집에 기생충처럼 기숙하고 있냐며, 한심하게 여긴 거지.와, 김효원은 정말 열 받았을 거야.형편이 어려워서 친구에게 잠시 몸을 좀 의탁했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면박을 주다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분명히 김효원도 심의겸을 몹쓸 사람이라 단정 했을 테고, 이때부터 원한을 갖게 된 것 같아.
나중에 김효원은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되고, 이조전랑이라는 벼슬에도 추천을 받게 돼. 이조전랑은 관리의 인사 행정을 담당했기 때문에 많은 신하들이 선망하는 자리였어. 그런데 한 사람, 심의겸이 반대하고 나서. 간신배 윤원형의 집에 들락날락 거리는 자에게 그런 중요한 관직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 어쨌든 김효원은 이조전랑에 임명이 되지만, 미움은 더 커졌을 거야.
김효원의 임기가 끝나자 다시 후임자를 정하게 돼. 공교롭게도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추천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김효원이 강하게 반대해.심충겸은 왕비의 형제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야. 사실 권력가로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윤원형도 예전의 왕비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이라는 후광을 업고 권력을 남용했던 거였거든. 그래서 왕비의 핏줄, 즉 외척에게 그런 중요한 자리를 맡기면 안 된다는 거였지. 김효원의 입장에서는 후련하게 복수한 것이겠지만, 이번에는 심의겸이 엄청 열 받았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철천지 원수가 되는데, 두 사람의 입장을 각각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덩달아 서로 갈라지게 돼. 이때부터 김효원을 지지하는 무리를 동인, 심의겸을 지지하는 무리를 서인이라 부르게 된단다. 김효원의 집은 한양 도성 동쪽인 낙산 아래 건천동에 있었기 때문에 동인, 심의겸의 집은 도성 서쪽인 정동에 있었기 때문에 서인이라 불리게 된 거야. 작명 센스가 참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조선의 역사 내내 많은 정쟁과 피바람을 부르기도 했던 당파 싸움은 이렇게 시작돼. 그리고 200년도 더 지나고 나서 한쪽 정파의 씨가 완전히 마르는 데 이르러서야 사실상 사라지게 돼. 그 이후에는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어, 붕당정치보다 더 지독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는 후일담과 함께 말이야.
물론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붕당정치에 폐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야. 지금 우리나라만 봐도 여당과 야당이 허구한 날 싸우기만 하는 꼴이 보기는 싫지만, 그래도 북한의 일당독재보다는 훨씬 낫잖아.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붕당의 균형이 점점 깨지면서 일당독재화 되다시피 변질된 이후로는 부작용도 많았지. 정약용처럼 능력 있는 분이 당파 때문에 제대로 등용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던 것이 좋은 사례야.
이처럼 조선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붕당의 시작이 김효원과 심의겸이라는 두 사람의 소소한 개인감정에서 출발했다는 게 참 흥미롭지 않니? 만약 그 두 사람이 윤원형의 집에서 마주쳤을 때, 심의겸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 했다면 어땠을까? 자기 멋대로 김효원이 윤원형에게 빌붙어 산다고 판단 내리지 않고, 다른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으면? 아니, 처음부터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한번 제대로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심의겸이 김효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선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돼.
편견 :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어쩌면 편견은 우리 인류의 생존 과정에서 유전자 속에 깊이 박힌 잠재의식일지도 몰라. 편견 덕분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들은 적이 있어.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만났다고 해보자. 호랑이가 아직 나를 공격하지는 않더라도,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라는 편견 때문에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치면 살아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편견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하기도 해. 마치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너에게 사탕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해도,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편견을 갖고 그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반대로 편견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차별을 겪게 되는 문제도 종종 발생해. 정치적 생각이 달라서, 국적이 달라서, 출신 지역이 달라서, 성별이 달라서, 경제적 능력이 달라서, 종교가 달라서 등등. 그 사회의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그들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이유가 되는 것 같아. 바야흐로 오늘날 우리 세상은 그야말로 혐오의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야. 물론 이런 혐오의 감정 뒤에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잠재의식이 숨어있는것도사실이라 생각해. 예를 들어, 지금 코로나 19라고 명명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란 나라와 신천지라는 이단종교에 대해 혐오를 쏟아내고 있어. 그들의 공격적인 모습 뒤에는 이들 때문에 언제 나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야. 이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이라 그것 자체는 어쩔 수 없어.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습을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단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이성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차분하게 판단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다시 김효원과 심의겸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때 심의겸이 자신의 편견에 따라 멋대로 판단 내리지 말고, 김효원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해 보려 노력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돼. 충분히 김효원의 얘기를 들어보고 나서 이후에 천천히 판단을 내려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지.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또는 일을 하다 보면 즉각적인 판단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중요할 때도 있단다. 하지만 네 친구를 평가한다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는 그것보다 훨씬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그 사람의 단편적인 행동이나, 첫인상만 가지고 만든 편견으로 그 사람을 섣불리 정의 내려 버리는 것은 정말 조심하거라.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야. 그 사람의 여러 면모와 성격을 제대로 경험해 본 다음, 관계를 멀리 하거나 가까이 해도 늦지 않아.
김효원과 심의겸은 나중에 서로 화해를 하고 오해를 풀었다고 해. 하지만 이 두 사람으로 인해 시작된 붕당 간의 당파싸움까지 사라졌던 것은 아냐. 오히려 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지속되었어. 이처럼 섣불리 내린 단정적인 판단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거라. 사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한 행동 하나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특히 ‘중국인은 원래 그래’, ‘일본인은 원래 그래’, 이런 식으로 어느 집단을 단순하게 정의 내리는 것은 주의해야 해. 어딜 가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그런 것은 아니란다. 한국인 중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건데, '한국인은 원래 다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인 것처럼 말야. 그러니 사람을 대할 때는 최대한 편견을 갖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대해야 한다.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노력하며 살도록 하자. 그러려면 그 사람의 상황과 입장을 좀 더 고민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일단 아빠랑 너부터 우리 서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도록 할까? 혹시 나중에 네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더라도, ‘어휴, 저 녀석 나중에 뭐가 되려고 저러나.’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으마. 약속할게!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