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날 필요로 한다고 말해줘.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줘. 내가 그럴 자격이 있고 나면 충분하다고 말해줘. 난 그게 필요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수 로제가 발표한 신곡 'number one girl'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고 밀려 올라오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찾아본 인터넷 기사에는 이런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number one girl은 인터넷에서 댓글을 보며 밤새 스크롤을 내리던 어느 날 이후에 쓴 곡이다. 새벽 6시까지 잠도 못 자고, 세상에 인정받으려 애쓰는 제 모습에 지쳐버렸다. 이 곡은 제가 가장 솔직하게 쓴 노래다."
"연습생 시절 항상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데뷔 이후에도 팬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내 이런 면을 보여줘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했기에, 이 앨범이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울컥했던 이유는 단순히 가수의 실력이나 아름다운 멜로디를 넘어서, 그가 전하고 싶었던 솔직한 마음이 노래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떤 꾸밈도 없이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함은 때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용기의 크기만큼이나 강력한 울림을 준다.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음'을 뜻하는 '솔직'이란 단어는, 한자어 '率(거느릴 솔)'과 '直(곧을 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率은 거느리다는 뜻 외에도, 이것과 반대되는 뜻처럼 보이는 '따르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率의 갑골문을 보면 밧줄을 잡아당길 때 부스러기가 튀는 모습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는 동아줄에서 유래한 한자임을 짐작케 한다. 동아줄은 풀어서 옮기면 가는 대로 끌려가지만, 뭔가를 묶어서 끌어당기는 역할도 한다. 어떨 때는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어떨 때는 무언가를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동아줄임을 연상해 보면, 率이 '거느리다'와 '따르다'는 뜻을 동시에 가진 이유가 이해되는 듯싶다.
때로 느슨하게 풀려 있기도 하지만 때로 강하게 당기는 데 사용하기도 하는 동아줄은 마치 근육과도 비슷하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손과 손목의 힘을 조절하는 전완근처럼, 급변이 마려운 순간의 괄약근처럼 근육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쉬어야 할 때 함부로 근육을 쓰거나, 근육을 써야 할 때 제대로 안 쓰면 몸이 망가진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육은 비단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도 근육이 존재한다. 몸의 근육이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듯, 마음의 근육은 우리 마음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제 솔직하다는 뜻을 다시 해석해 보자. 솔직하다는 것은 곧음(直)을 위해 내 마음을 거느리기도(率) 하지만, 그저 내 마음에 따르기도(率)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항상 마음의 근육에 힘을 꽉 쥐고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만이, 또 반대로 마음의 근육을 늘 풀고서 느슨한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것만이 곧고 바른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일상생활에서 근육의 힘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내 마음의 근육도 상황에 따라 강약을 잘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생 시절과 데뷔 이후에는 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외로움을 견뎌내고자 마음의 근육을 더 단단히 조였기에, 그리고 number one girl이라는 노래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마음의 근육을 풀 줄도 알았기에 오늘날의 대스타 로제가 탄생한 것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마음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만 있겠으며, 또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는 완벽한 리더로 보이고 싶고 집에서는 완벽한 가장의 모습으로 살고자 하지만, 때로는 나의 연약한 모습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위로받고 싶은 것이 우리의 참모습 아니겠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솔직함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