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류아 Sep 30. 2015

'서랍 정리'로 마주한 나

옛 블로그와 글을 돌아보며: 장하다. 잘 자라주었다.

'서랍 속 글.. 그러고 보니 다시 꺼내본 적이 없었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까?'

 가끔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뭘 할까 하다가 브런치의 권유대로 '서랍장의 글을 꺼내'기 위해 옛날 블로그들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책상 위에 꺼내놓을만한 수필을 찾기 위해서. 썼던 글이 많아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재업로드 할만한 글은 4편 남짓에 불과했다. 잘 썼지만 너무 사적인 글, 좋은 소재지만 정말 짧은 글 등의 '아차상'도 얼마 안 됐다. 독자들과 더 나누지 못해 참 아쉽다. 한편으론 감사하다. 즐거운 기회가 생긴 거니까. 열심히 써놓기만 했지, 차분하게 전부 다시 읽어본 게 언제였더라? 거의 처음이 아닐까?

여러 카테고리 중 '일기장'의 글. 예전의 나에게 새삼 놀랐다. 정말 치열하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다시 보면서 다양한 기분을 느꼈다. 대개는 피식 웃었다. 가끔 감탄했고, 어떤 것들은 부끄러워서 킥킥거리며 '아이고..' 소리를 냈다. 반면 어떤 점은 현재의 내가 어릴 적 나에게 배웠다. 간혹 옛날 신념을 마주하기도 했다(몇몇 생각은 심지어 정반대). 청소년 특유의 무서운 혈기+작가라는 꿈+자아정체감 형성기의 미숙함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재미난 모양을 빚어냈다. 둘러보기를 막 마친 지금, 묘한 만감이 교차한다. 공통점을 추출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기특허구먼'이다. 열심히 살았네. 치열하게 썼네. 허허. 잘 자랐다.


 서랍 속에서 나와 책상 위에 펼칠 글이 적은 건 당연하다. 세월이 흘렀으니까. 정작 그 시간을 흘러 온 나는 잘 알지 못했는데, 생생한 기록을 보며 와 닿는 차이를 느꼈다.

 가장 먼저 글 내용과 공개 정도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엔 속 이야기를 거의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전체공개로. 심지어 '검색허용' 되어 있다. 지금은 민감하다 싶은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로 돌리는데. 다행히 블로그를 닫으면서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만, 참 난처했다. 비유하자면, 가려서 해야 할 말도 고래고래 소리 질러 이야기한 꼴이니까. 블로그에 방문자가 더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컸나보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소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생각했으니.

16살 때 쓴 글. 제목은 "영원할 것만 같은 현재". 어떤 대목은 지금도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싱긋 웃음만 나온다.

 두번째로, 서술의 차이를 느꼈다. 어른스럽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보였다. 소위 '중2병'도 많이 나타난다. 다시 보니 입 찢어지게 웃기지만, 그땐 눈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으리라. 매우 진지하게. 그 영향 때문인진 몰라도 글이 읽기 조금 거북하다. 조사 남발, 부자연스러운 연결 등등. 과거에도 지금도 문학적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예전보단 지금이 훨씬 낫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큰 변화는 고등학생 때 생겼다고 본다. 대입준비로 논술도 했는데, 학교 학원 등에서 받은 첨삭지도가 도움이 된 모양이다. 물론 평소에도 꾸준히 글(대개 일기)을 썼으니 가능했던 열매겠지?


쓰고 지우고 고민하고.. 당장 눈에 띄진 않아도,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지금 끼적이는 낙서와 한 문장. 오늘 쓰는 이 글 한 편. 다 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거듭하는 퇴고.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한 관찰과 고민. 다시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꾸만 글을 쓰고, 더 잘 쓰기 위해 고심하는 게 나와 세상에 무슨 변화를 일으킬까?' 싶기도 하다. '빨리빨리'와 보이는 성취가 중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따금 흔들리기도 한다. 괜히 에너지 쏟는 거 아니야? 이 방법이 맞는 건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흔한 예화가 있다. 혹은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큰 나뭇가지를 부러뜨린다는 예화도 자주 인용된다. 정말 흔하디 흔한 비유지만 그게 진짜니까. 작고 꾸준한 노력이 지닌 위력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니 거듭 화자된다. 옛 블로그와 거기 고이 간직된 글을 훑으며 이 흔한 비유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가슴으로 느꼈다. 나는 분명히 예전에 비해 성장했다. 생각보다 꽤 많이. 어제 내딘 작은 발자국 하나. 오늘 내딘 작은 발자국 하나. 그 자취가 쌓이고 쌓여서 나는 어느 샌가 이만큼 멀리 나아왔다. 앞으로도 더 나아갈 거고!



 잠을 설치다 시작한 '서랍 정리'는 기대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정리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 기특하다. 장하다. 잘 자라주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마음이 먼저 알기 때문에 더더욱 기쁘다. 성경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라고 했는데. 지금 심경을 표현하는 딱 알맞는 말이다.

 오늘도 글을 쓴다. 이 글도 서랍 속에 간직되겠지. 먼 훗날 서랍을 열고 꺼내었을 때, 이 속에서 한껏 미숙한, 혹은 성숙한 나와 마주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 나와 내가 만나고,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기를. 우리의 만남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세워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를 조금만 헤아려준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