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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Oct 06. 2015

아픔, 상처가 열매 되어..

예전 문청의 실패로 점철된 이야기. 그리고 소망.

 이유 없이 힘겨운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냥 힘들었다. 할 일이 많았지만, 조용한 방에서 혼자 잠을 청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기한에 맞추느라 생긴 피로감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고.

 몇 시간이나 잤을까. 부스스 일어나서 시계를 보려 태블릿을 켰는데, 화면 가득히 알림이 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님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님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님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 꿈이나 헛것이 아니었다. 뭔가 거대한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앱을 켰다. 메인에 선정된 글을 확인했다.

 이윽고 나는 바로 무릎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예전엔 문청’. 브런치에서 나를 소개하는 첫 문장이다. 글이 좋고 글쓰기가 좋아서 중학생 때 문학을 시작했다. 그러한 ‘문청(文靑)’생활은 고3까지 이어졌다(2번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엔 단순히 글 자체가 좋아서 시작했으나, 점차 변질돼서 갈수록 ‘성취’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예를 들면 블로그 방문자 수와 덧글/스크랩 횟수를 쉴 새 없이 지켜봤다. 인터넷 밖에서는 더 확실한 결과를 찾았다. 어느 대회에 입선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혹은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잘 썼네.’ 한 마디를 듣는 데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남들보다 더 잘 쓰기 위해 무척 애썼다. 사랑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자기 파괴적인 행위였다.

 게다가 글 잘 쓰는 천재들은 얼마나 많은지. 겨우 이 사람을 따라잡았다 싶으면 더 빼어난 사람이 또 나타났다. ‘이제 나도 좀 괜찮다!’ 싶으면 우연히 본 좋은 글이 콧대를 납작하게 했다. 이런 반복이 지속됐다. 갈수록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비교. 끝이 없었다. 기준이 잘못됐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고 말았다. 내가 부족해서.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노오오오력의 부족’. 그랬기에 스스로를 매섭게 채찍질했다. 대개 기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점차 좌절, 절망감이 가슴 깊이 뿌리내렸다. 내 가능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백일장, 공모전 등에서는 늘 탈락, 낙선이었다. 교내에서 재미 몇 번 본 것 말고는. 문청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그랬다. 한 번도 ‘성공’이라 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기실 지금 돌아보면, 나름대로 크고 작은 성취가 있었는데!).

 저 멀리서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다른 문청들을 보면서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노력하는데도 왜 성과가 없지? 왜 이렇지. 왜 이렇지? 나는 내 노력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성과가 없다.. 왜지?’ 자문을 거듭하다가 끝내 주저앉아버렸다. 잠시 멍하게 지냈으나, 곧 정신 차리고 그 자리를 깊이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닌 열정과 진정성은 다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피땀 어린 노력의 원천도 진정성이었다.

위가 아니면 아래로. '진심의 샘'을 찾아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 깊이 위치한 ‘진심의 샘’을 찾으려 했다. 글을 쓰기 이전에도 나는 항상 굳게 믿어왔다. 진심은 통한다고.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결국 언젠가 진심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리라 믿었다. 그래서 아래로 아래로 점점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진정성’ 하나만을 바라고. 이 작업은 작가의 꿈을 접은 뒤에도 묵묵히 계속했다. 궁극적으로는 진심 어린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진심 어린 사람이 된다면 글은 인격에서 우러나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인관계에서 겪는 거절감과 아픔, 수치심, 모멸감 등 온갖 부정적인 경험이 나를 맹렬히 격동시켰다.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며 삶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했다. 자주, 너무 아파서 격하게 울부짖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고통이 진정성을 지닌 글을 짓는 데, 진심 어린 사람이 되는 여정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오히려 더욱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현재 관계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실패로 허우적거렸기에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성경 구절처럼 말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 직접 느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느낌은 항상 내 가슴 어딘가에 옅은 흔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작은 밀알 하나가 저렇게 많이.. 내가 겪었던 아픔이, 누군가에겐 위로로 결실 맺었다는 데 감사했다.

 메인에 소개된 그날, 덧글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고맙다고. 용기/따뜻한 위로를 얻었다고. 그런 반응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고백하건대 글을 쓰고, 완성 뒤 다시 읽으며 가장 큰 힘을 얻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글을 쓰는 순간마다,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많은 세월을 끌어안았다.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이자, 위로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메인에 선정되고, 나도 모르는 다양한 경로로 엄청나게 글이 퍼져나갔다. 상상해본 적 없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놀라웠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서 아래로 향했던 건데, 그게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글에 녹여낸 나의 진정성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마음을 열었다.  치유받고, 힘을 얻었다. 막연히 상상해봤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도저히 내 능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내 상처와 아픔도 사용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는 소망한다. 오늘 내가 쓰는 글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적시길. 작은 밀알 하나로 마음속에 심겨져 썩고, 거름이 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보탬이 되기를..


1번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ohgangsan/8509419

표지 & 2번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miral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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