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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삶은 일일 연속극을 만든다.

by 퍼스댁

내가 다섯 살, 여섯 살쯤 되었을 때 한참 인기 있었던 시트콤이 있었다.

'LA 아리랑'-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한 교포들의 삶을 그린 시트콤이었는데, 방영 종료를 한 뒤에도 가끔씩

찾아보던 추억의 시트콤이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일지는 몰라도, 외국에 사는 한국인의 일상은 한국에서의 일상과는 닮은 듯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퍼스에 이민 온 지 5년 차,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퍼스에 살아서 이곳으로 워홀을 오게 되었다.


7살 때 처음 마셔본, 목구멍을 톡 쏘는 콜라의 맛에 미친 듯이 빠지면서 한때는 코카콜라 공장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고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쭉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여겼다.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재미있는 일이든 그 모든 일들을 일기에 적으며 에피소드들을 모아갔다. 풍성한 에피소드를 많이 겪을수록, 다양한 글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말, 대학 입시 상담을 할 때 나는 무조건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학교의 진학률, 더 자세히 말해 인 서울 대학교의 진학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셨던 선생님은 '내 꿈'과 상관없는 소위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독어독문과, 지리교육학과 등을 추천하셨다. 그저 내신과 수능점수를 진학 사이트에 돌려 안정권이 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능을 준비하느라 실기 준비를 하지 못한 나는 실기를 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문예창장과를 지원했다. 그것도 전문대로. 어차피 실전에서 실력을 키워야 하니까, 얼른 글쓰기를 배우고 현장에 나가 일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을 뿐이다. 대학시절 내내,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연극, 시와 소설을 마음껏 누리면서 시나리오와 단편 드라마를 쓰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구분을 지었다. 4년제 대학교는 더 뛰어나고, 전문대학교는 더 떨어진다. 그것에는 글에 대한 나의 열정도 꿈도 하위계층으로 평가되는 것 같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 방송작가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쁠 거니까.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라는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다양한 분야의 방송작가의 삶을 엿보며 얻은 결론이었다. 2012년 8월, 혼자서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때 당시는 지금만큼 유럽여행을 많이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주변에서 위험할 거라며 만류했고, 친오빠는 나에게 "우리 아빠는 리암 니슨이 아니기 때문에, 네가 테이큰당하면 구해줄 수가 없어"라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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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유럽 여행다시, 바이러스 걱정없는 유럽.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듣는 것이 좋았다. 유럽여행 중 만났던 J오빠는 그때 막 스페인의 산티아고-순례자의 길을 40일동안 걷고, 다른 유럽 도시 여행을 시작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빠가 들려주는 산티아고의 길 위 스토리는 나에게 반짝이는 보석과 같았고, 산티아고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당시는 아직 산티아고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때였다.


유럽여행을 마친 뒤,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 사람보다는 대부분이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순례자의 길에서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들의 삶을 듣기 위해서는 세계인의 공통어인 '영어'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가방을 쌌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1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지내면서 영어도 부딪혀보고 1년을 보내고 난 뒤, 큰 짐은 한국으로 보내고 배낭 하나를 메고 두바이를 거쳐 스페인으로 갈 비행기 편까지 생각해놓았다. 이 모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더 풍성한 글을 담아낼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해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퍼스에 친구가 다니는 한인교회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스토리를 담아내기엔 너무나 긴 스토리이지만 1년 연애와 1년의 장거리 연애를 거쳐, 2년 반 만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한 뒤, 이곳으로 이민 온 지 올해로 5년 차가 되었다.


모두가 말한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너의 인생은 특급 반전이다!"

남자 친구 한 명 사귀어보지 못한, 내내 짝사랑만 하고 살았던 내가 첫 남자 친구와 결혼이라니! 결혼 후 바로 이민을 간다니! 친구들 중에서도 나는 제일 늦게 결혼할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방송작가로 일하면 연애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 대학 친구들 중 방송작가로 제일 열심히 살 것 같았던 나는 호주 이민자가 되었고, 친구들 중 제일 방송작가에 관심이 없던 친구 혼자 방송국에 남아 올해로 방송작가 10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가끔은 그 친구의 일상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도 한국에서 살았다면 저 친구와 같은 삶을 살았을까?

나도 한때는 그 삶을 동경하며 살아왔는데..
방송작가가 아닌 미래의 내 모습은 그려본 적이 없는데..


부러움에 찬 눈으로 그 친구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이 선택이 실패했다, 잘못했다 할 수 없으니까. 방향이 바뀌었을 뿐,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거니까.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바꾼 모습만 봐도 그렇다.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나가도 내일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퍼스로 이민 와서 살다 보니,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있다. LA 아리랑 시트콤과 닮아 있다. 한국에서 그들은 학교 선생님, 잘 나가는 회사원, 피아니스트, 수영선수, 그리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던... 그들의 화려했던 이력은 잠시 접어 두고, 이 곳 호주에서 새롭게 써 나가는 모두의 고군분투기.


마치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단편소설을 묶어놓은 장편 소설 같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각의 에피소드가 다 다르지만 크게 보면
모두가 연결되어있는 일일 연속극 같다.


퍼스로 와서 호주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지금은 긴 휴학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어떤 스토리를 펼쳐나갈지 그 누구도 모르기에 가슴 뛰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을 또 살아가 본다. 아마도 다음 씬에서는 '엄마'라는 배역을 맡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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