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백

by 한명화

어린 시절 고향집엔 쌀뒤주가 없었어

큰 도련님이시던 아버지는

할머니의 며느리 시집살이 너무 심하자

큰 아들 자리 내려놓고 살림을 난다 셨다네

할머니는 그런 아들 미워라

아버지를 빈 몸으로 내보냈다나

할머니는 곡간에 쌀 가득 채워두고도

아들 미워 손주들도 몰라라 하셨지


덕분에 어린 시절 배가 고팠어

배고픈 자식들 먹여 살리려 약방집 곱던

막내 따님은 온몸 부서져라 일하셨지

많은 날들 지나 큰 집 사서 이사하고

광에는 쌀뒤주에 쌀 가득 채우고

쌀가마니도 쌓아 배고플일 없다며

안도의 깊은 한숨 품어 내쉬는데

어린 자식들 다 자라 품을 떠났지


전시관 광안에

쌓여있는 쌀가마니 쌀뒤주 바라보며

어린눈에 보였던 할머니 댁 광이 생각났어

귀한 약방집 막내딸인 어머니

이 악물고 일하신 고생에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리도 들리네

그리 멀지 않은 옛 일인데

이제는 배고픈 시절 얘기하며

무얼 먹을까 맛을 찾아 여행 떠나는 세상


여행지 전시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쌀뒤주 쌀가마에

스쳐 지나가는 기억 소환된다

무엇이나 부족했던 가난한 시절

어머니 부엌에서 눈물 훔치시던 날

할머니 댁 쌀뒤주에 하얀 쌀 바라보며

할머니가 너무 미웠던 작은 꼬맹이

뒤꼍에 홀로 앉아 눈물 닦아내던 모습도


구순의 어머니 쌀 뒤주 보시고는

옛일 생각나시나 보다

그때는 참 너무 힘들었지

제일 힘든 건 새끼들 배고픈 걸 보는것이야

나중에 실컷 줄수 있었는데

너희들이 다 자라 떠나 버렸어

어머니 눈가가 촉촉해 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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