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날
며느리 전화
'어머니 마트에 나왔는데 기본 말고 다른 것 필요하심 알려 주세요'ㅡ라고
기본에 사 왔던 것에 남은 것이 많이 있으니
고기만 좀 사면될 것이라 했다
아직도 매달 냉장고를 채워주는 며느리는 스스로 기본에 이런저런 고기류에 해물류 그리고 생선등을 넣어놓고 때로 곁가지를 더 가져다 넣어 놓는다
며느리가 묻는 말에 이것도 있다 저것도 아직 남았다고 대답했는데 다시 아들의 전화
'엄마! 구체적으로 답해주세요
은미가 어머니께서 다 있다 하신다고 난감해하는데요ㅡ그러니까 조금씩 남은 거네요
다 사면되겠구먼 알겠어요'ㅡ라며 전화를 끊는다
며느리 다시 전화
'어머니! 내일 일찍 갈게요'라고
몇 시인지? 일찍이라 했는데ㅡ
설날아침
망설이고 있는 내게 짝꿍
'왜 그러시는데'
며느리가 오늘 일찍 온다고 했는데 몇 시쯤 오려나?
일찍 와서 아침 같이 먹으려나 해서요
'바라기는ㅡ
요즘 애들의 일찍이 몇 신줄이나 아슈?
아점쯤 될 걸세'ㅡㅡ
그런가?
우리 세대는 설날아침 일찍이라 하면 새벽 일찍 달려가 설 아침상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세대 차이인가?
그러기에 늘 했던 것처럼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보다
나의 망설이는 눈빛을 읽으시고는
짝꿍은 그냥 우리하는 대로 하라신다
아마도 점심 전 좀 일찍 오겠다는 말일 것이라고ㅡㅎ
그믐날은 오전에 불곡산에 다녀와서 오후에 설준비에 초집중하였다
며느리가 미리 냉장고에 채워두었던 갈비랑 동태포를 꺼내 고기는 양념해 두고 동태포 옷 입혀 동태 전에 표고버섯전도 하고 무소고기 국도 넉넉히 끓여두고 더덕을 손질해 돌판에 두드려 부드럽게 초무침해 두고 잡채는 먹을 때 하려 재료 손질해 두고 고사리도 불려 고사리 나물 하고 이것저것 많이도 해두었네 사과랑 배도 있으니ㅡ
설 아침상을 차려놓으니 식탁 가득 채워졌다
제사가 없으니 평일과 다름없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흉내만 내보았다
아마도 가신 어머니가 보시면 설 떡도 안 하고 과즐과 강정도 안 하고 식혜도 안 했다고 꾸중하실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둘이서 술도 한잔 하며 서로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응원도 해주며 설 아침을 먹었다
얼마 전 까지도 시댁에 다니느라 우리 집에서 설 아침 상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다 가시고 나니 우리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마주 보며 웃는다
11시쯤?
일찍?
아들내외가 왔다
냉장고 채울 식품을 바리바리 가지고 왔다
함께 정리하여 냉장고를 다시 꽉 채우고는
점심을 준비해서 아들내외와 딸까지 모두 둘러앉아 그야말로 명절을 맞았다
덕담을 나누며 식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세배도 받고 세뱃돈도 받고 간식을 먹으며 우리는 윷놀이를 하였다
딱 한판만 재미있게 하고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어서 친정에 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예전에 명절마다 시댁에만 다니고 멀리 떨어진 친정에는 간 적이 없어 늘 뭔가 서운한 명절이었기에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가 기다리실 것이니 어서 가보라 재촉하였다
마지못해 일어서는 것 같은 며느리의 표정이 활짝 웃는다
그래야 한다
현재의 시어머니는 설 한 끼 같이 먹었으면 감사해하고 어서 보내주어야 한다
양쪽 다 얼마나 귀한 자식들인가
딸과 사위의 모습에 반가워하는 사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보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어차피 아들도 장가가고 나니
내 아들 아닌 며느리를 사랑하는 그녀의 남편인 것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