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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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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Feb 21. 2024

청백리를 만나러 가다

묘지를 향해 가는 산길
묘지 바로 앞 눈길
맹사성 묘
평안한 표정의 문인석
묘앞에서 바라본 정경
흑기 총
정경부인의 묘

며칠 전 날씨가 싸늘했지만 가까운 광주 쪽을 돌아보기로 하고 나선 여행길

경기도 기념물 제21호인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맹사성 묘를 찾았다

네비의 안내에 따라가다 보니 산으로 향하고 있었고 가다 보니 산길 앞에 차단기가 있고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주차장이 없어 일단 갈 옆에 주차를 하고 나니 마침 산불관리 차량이 와서 문안으로 들어가기에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지 묻자 안된다며 곧 문을 잠글 거라고ㅡ칫

그 문은 우리가 묘지를 돌아보고 나올 때까지 열려있었다

아무튼 못 들어간다니 그 차는 들어가고 우린 걸어 들어갔는데 400여 m쯤 올라갔을 때 넓은 터가  있는 곳이 주차를 하는 터 같았다

그곳에서 100여 m 쯤 산길을 오르니  안내판이 있었는데 맹사성묘와 흑기총의 방향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곳부터는 하얀 눈 쌓인 길에 둘이서 발자국을 내며 맹사성 묘에 도착해서 묘지를 둘러보니 사초를 한 흔적이 보이고 비와 상석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았지만 묘지 앞의 작은 비석과 문인석은 옛 그대로의 모습 같았다

묘지 앞 안내에 보니 세종 때의 재상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는 7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묘 앞에서 상을 치러 그 고향인 온양에 효자문이 세워졌다한다

또한 우의정으로 있을 당시 태종실록, 팔도지리지 편찬을 추진 조선초기의 문화발전에 기여했다고ㅡ

맹사성 묘를 살펴보고 돌아서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기가 막혔다

묘지를 내려와 흑기총을 향했다

흑기는 맹사성이 어느 날 길을 지나는데 검은 짐승을 아이들이 놀려 막아주었는데 그 짐승이 계속 따라와 집에서 기르게 되었다

이 검은 소는 잘 자라 후일 맹사성이 한양을 오갈 때 흑기를 타고 다녔으며 맹사성이 죽자 흑기는 먹이를 먹지 않고 굶어 죽어 맹사성의 묘 가까이에 묻어주고 매년 술을 부어주며 추도해 준다고 한다는 이야기에 주인을 향한

검은 소의 충정이 가슴 뭉클했다

누군가는 맹사성이 유언으로 흑기가 죽으면 가까이에 묻어달라 ㅡ고 했다고도 한다

미루어 보아 맹사성도 흑기도 서로를 늘 배려하고 아꼈던 거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눈길이 미끄러운 흑기총을 내려와 산길을 다시 100m쯤 내려오면 맹사성 부인의 묘가 있다는 화살표를 보고 거의 200여 m쯤 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부인의 묘지가 있었다

부인의 묘지 둥근 석태를 둘러놓은 것이 사초의 흔적이 보였고 묘 앞 묘비는 맹사석의 묘비와 같은 크기의 작은 옛 묘비가 있었다

왜? 

이쪽저쪽에 모셨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묘지 능선을 바라보니 능선이 맞닿아 있나? 능선으로 올라가 넘으면 맹사성의 묘가 바로 곁에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죽어도 부부는 가까이에 있어야지ㅡ라며 마음이 놓였다

맹사성의 묘를 찾아올 수 있는 것은? 

그의 삶이 재상임에도 불구하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청백하게 사셨으며 많은 공적을 남겨 존경의 마음이 담기기 때문 이기에 일것이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매일이 시끄러운 오늘날의 정치인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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