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삼대대첩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이 있다
이중 행주대첩을 이끄신 권율장군의 묘를 찾아가 보았다
권율장군묘
경기도기념물 제2호
경기도 영주시 장흥면 석현리
호는 만취당, 본관은 안동
조금 멀리에 주차를 하고 이정표를 따라서 묘소까지 가는 길은 날씨가 좋아 상큼했다
묘지를 감싼 담벼락 위의 멋스러운 기와의 운치가 역시 아름답다
정문을 통과해 비각을 만나고 제실도 지나고 풍파에 글이 사라진 신도비?를 지나고 돌계단을 오른다
완만한 능선길이지만 한참을 올라야 했다
묘는 3기? 설명을 보니 중앙은 장군묘이고 좌우로 전 부인과 후부인 묘라는 걸 알았다
위로도 묘지들이 있었는데 정승을 지낸 조상들의 묘라는데 저 밑에서 올라올 때부터 어느 젊은이가 위쪽 묘지에서부터 내려오며 절을 올리고 있었다
조상을 기리는? 아니? 느낌이 그건 아닌 듯한데? 이유야 어찌 됐든 술과 안주를 간단히 차리고 진중하게 예를 다하는 모습에
묘를 살펴보고 청년에게 누가 될까 해서 돌아 나오다가 안내문을 살펴보았다
ㅡ1537년 조선중기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출생,
ㅡ 선조 15년 문과에 급제,
ㅡ 예조정랑, 호조정랑을 거쳐
ㅡ 55세 때 의주목사부임
ㅡ임진왜란 15592~1598년에는 전라도 도절제사로 임명되어 군사 1천 명을 모집 충청도 금산 배티고개에서 전주로 진격하는 1만여 대군을 격파하였고 그 공로로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
ㅡ1593년 2월에 서울 회복 위해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2800명의 군사로 3만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첩이 임진왜란 3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이다
ㅡ이후 전군을 지휘하는 대원수가 되었고 임진왜란이 끝나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사망하였다
ㅡ이에 나라에서는 선조 37년에 영의정으로
관직을 올렸으며 1604년에 충장의 시호를 내렸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이처럼 후대들이 자랑할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위인이 있다는 것은 집안의 자랑이요 나라의 귀함이구나 ㅡ라며
아직도 묘지에서 절을 올리고 있는 청년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