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문학관에서
생가를 돌아보고
앞마당 같은 공원도 돌아보고
정지용 향기로 뒤덮인 동네의 모습을 보며 시인의 모습을 찾아 문학관으로 왔다
정지용 문학관
하얀 동정의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단정하고 평온한 표정의 시인이 어서 오란다
깜짝! 어쩜 살아 계신 것 같네ㅡ
반가움에 기념사진을 찍도록 비워둔 의자에 앉아 슬쩍 손을 잡았는데 ㅡ
이ㅡ크 뭐지? 이 감촉은?
깜짝 놀라는 내게 안내원이 웃으며 말한다
손을 만지시면 안 됩니다ㅡ라고 한다
일어나 살펴보니 의자에 안내가
손을 만지지 마세요ㅡ라고
너무 반가워 그걸 못 보았구나
손의 감촉이 살아있는 듯하네요ㅡ라고 묻자
그렇게 만들었는데 많은 방문객이 손을 잡다 보니 색이 변색되어 이제는 금지라고ㅡ
문학관 안에는 향수의 노래가 잔잔히 들리고
그 시절 활동상황과 함께했던 분들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정지용시인은 현대시의 초기 시인이었으며 1939년 문장지의 시부분 추천인으로 활동하며 청록파 시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과 시인 윤동주, 시인 이상을 발굴해 내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시품으로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나 1935년 정지용시집 초판을 보며 걸음이 멈추었고, 1941년 백록담
1946년 정지용 시집
1946년 지용시선
1948년 산문으로 문학독본 1949년 산문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또 친필편지가 있었는데 흐트러짐 없이 써 내려간 필체는 깔끔했을 것 같은 시인의 성품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돌아보다 보니 재미있는 체험도 있었는데
천장에서 쏘는 빛에 손을 올리면 손바닥에 시가 띄워져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체험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의 시인 정지용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많은 시인들을 발굴했으며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그는 고향 옥천에 내려와 살고 있던 중 6.25 때 젊은 시인들이 만나러 왔다며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나갔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그의 소식은?
~~~ 더라로 무성하게 많았으나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으며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보가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시인의 이야기를 읽어보며 아픈 마음으로 나오는데 입구 안쪽 벽면에 시인의 시
향수가 위로를 보내고 있었고 계속해 들리는 향수 노래 또한 시인 정지용을 기억해 달라는 시인의 호소 같았다.
별똥 털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고
벼르다 벼르다
이제 다 자라 버렸다
세월이 휭~~~
삶이 다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