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에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다
옥천에 가게 된 계기로 들러보았다
우!ㅡ와!ㅡ
생가의 입구부터 솟을대문의 당당함과 대문 앞에 방명록 서명은 예삿집이 아님을 말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 사진으로 보여 드리듯 집의 위세가 대단했다
놀라 웠던것은 장독대 앞에 석빙고가 있었고 엄청난 크기의 뒤주 두 개가 나란하게 있었고 개인의 집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크기의 연자방앗간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일제강점기였는데 자동차 차고가 있었고
영사기도 있었다
둘러보다 들여다본 육여사의 방은 옛날 방 크기의 아담한 뒤뜰로 나오는 방이었는데 결혼 전까지 그 방에서 살았다고 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조선중기 1600 년대 김정승이 지었고 이후 송정승, 민정승 등이 살았던 집으로 삼정승 집으로 불렸다
1918년 육여사의 부친이 민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인 양식의 집으로 탈바꿈하였다
육여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방치되다가 유족들이 완전히 철거하였는데
2000년 옥천군에서 생가복원계획을 세우고 2003~2010년까지 37억 5 천마원을 들여 육여사의 회고록을 토대로 복원하였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옛집들을 보았지만 이 토록 규모가 크고 연자방아에 석빙고까지 있는 집은 처음이었으며 그 규모가 엄청났다
육여사의 생가를 돌아보고 돌아와 글을 쓰며
??? 의문이 많았다
일제강점기였는데?
1918년 이 집을 사서 고쳐 충청도 반가로?
1919년 독립만세 운동이 있었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부를 누렸다고?
나의 계속되는 의문의 질문에 딸이 다가와 말했다
아버지가 옥천군의 2대 부호였고 어디에도 친일 했다는 근거는 없다고ㅡ
하지만 일제 때 많은 부자들의 집안이 쓰러졌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닐 정도의 부를 누리며 전혀 외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의외의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