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영랑 생가를 찾았다
여행 중 기억되는 인물들의 생가를 많이도 찾아보았는데 그때마다 의아한 느낌은 생가가 아니라 생가 터에 고증을 거쳐 다시 지은 집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생가의 의미가 잘못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본 영랑 생가는 1948년 서울로 이사 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으나 1985년 강진군이 매입, 1986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고ㅡ
영랑의 생가라 쓰인 앞건물을 지나 열려있는
사립문으로 들어가니 초가 앞마당에 영랑의 삶에 대한 안내글이 있다
휘문의숙 재학시절 강진에 내려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일본으로 가 공부를 하고 돌아와 창작활동 중 시문학지를 중심을 시인들을 만나고ㅡㅡ등등
1903~1950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간 시인은 어쩌면 그렇게 주옥같은 시를 87편이나 남겼을까 라는 생각에 길지 않은 그의 생이 안타까웠다
입구 바위에는 대표작
ㅡ모란이 피기 까지는ㅡ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시름에 잠길 테요
ㅡㅡㅡ중략
마당에 놓인 몇 편의 시와 우물 그리고 장독대가 있는 아담한 초가에 토방에 놓인 댓돌에 올라 마루에 오르면 활짝 열린 방에 선생의 커다란 초상화가 절대로 시인 같지 않은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ㅡㅎ
선생을 만나고 마루에서 마당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토방의 댓돌에 눈이 멎는다
초가지붕의 마루 밑에 댓돌이 정겹다
영랑의 생가에서 어린 시절 토방에서 마루로 오르려면 키가 작아 댓돌 위로 올라 마루에 올랐던 고향집이 달려와 추억을 그려 보며
빙그레 미소 머금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