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마루에 걸터앉아서

by 한명화

다산초당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

윤단의 산정이었으나 그의 거처로 제공함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초가를 치우고 다시 지으며 기와로 복원했다

다산 서암

윤기종 등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이다

차를 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 해서

다성각 이라고도 하며 1808년 지어져 흔적만 남겨진 것을 1975년 강진군이 지음.

보정산방ㅡ추사의 친필을 보각한 것
연자석 가산

연못가운데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다산은 연못을 크게 넓히고 그곳에 잉어를

기르며 잉어를 보고 그날의 날씨를 알았다고

산 위에서 물을 끓어오는 대나무 수로

산 위 물이 나오는 곳에서 대나무 수로 만들어 연못에 물을 채웠던 다산의 지혜가 새삼 느껴졌다.

다신동암

송풍루라고도 불리는 동암은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은 곳이고 목민심서를 집필한 곳이다

현판 다산동암은 다산의 글씨를 집지한 것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이 글자는 다산초당의 제1 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씨인 丁만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성품을 보여 준다고ㅡ

천일각ㅡ흑산도에 유배중인 형을 그리워 했던 정자

다산 초당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다산 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네 길을 지나 대나무 숲길도 지나고 돌계단을 오르며 약 1km를 걸어 만난 다산초당이다

숲 속 깊은 곳에 귀양 온 다산이 바위에 새긴 정석이라는 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 10년의 유배생활을 보낸 다산은 그 유명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포등 500여 권의 책을 제자들과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늦도록 차담을 하며 보냈던 날들이 유배라는 명분으로 와 계셨지만

하지만 또 한편으로 돌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귀양을 오고 많은 시간이 주어졌기에 깊은 연구를 하고 글을 썼던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500여 권의 귀한 책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다산초당에서 귀양살이 덕분?

그분을 생각하면 귀양살이가 안타깝고

결과적으로 세상 빛을 보게 된 귀한 책들이

결과물로 나와서 감사한 일이고ㅡㅡ

다산 초당 마루에 걸터앉아 초상화를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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