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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억하고자 남기는 글.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자 형벌이라 믿는 이가

지난주 그가 떠났다.


누구나 언젠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주변 모든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전해진 그의 비보가 슬프기만 하다.


41살.

나보다 두살 아래 동생.

아내를 통해 알게된, 고집세고 할 말은 하고 사는 성격의 남동생 송민종.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내 전화기에 '사랑하는 민종씨'로 저장된 그를 기억하고자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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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세상을 살면서, 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 죽음은

'세상의 전부', '가장 큰 우주'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14살.

'죽음'이 떠난이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움을 넘어서는

'영원한 부재'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기에 그 분의 죽음은 유난히 크게 기억된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서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기억'으로나마 누군가의 마음속에 이토록 오랫동안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분께는 축복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디서 민종이를 처음 만나고, 인사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가까운 사람들의 결혼식에는 항상 그가 함께 있었고,

모임의 막내로서 항상 불편함을 감수했다는 것,

이따금씩 부산 매장에 와서 너스레를 떨고 갔다는 것,


충분히 차고 넘치게 잘난 친구지만, 항상 어딘가 결핍되어 있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는 한번도 그를 보지 못했다.

아내와 둘 중 한명은 아이들을 봐야했기에

아내를 보내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언젠가 그의 병세가 차도를 보이거나,

아이들이 좀 더 커서 누군가에게 하루쯤 맡길 수 있게 되면

만나러 가야겠다 생각했었다.


"카톡."

그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다.


"故 송민종님께서 선종 하셨기에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나에게는 그가 아팠던 기억이 없다.

아내를 통해 간간이 전해 들었던 그의 모습은

이전에 활기차던 것과는 달랐지만, 내 기억속에 그는

딱 보기 좋을 정도로 덩치 좋은

자주 웃던, 장난끼 가득한 모습이다.


사람은 떠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보다 오랜시간 함께한다는 점에서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된다는 것은 떠난 이에게는 축복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장례식 참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일곱살 큰 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질문을 이어나간다.


"민종이 삼촌은 왜 돌아가셨어?"

"아빠보다 몇 살 어린 삼촌이에요?"

"그럼 아빠도 하늘나라 갈 수 있는거야?"

...

아이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이내 울먹이기 시작한다.

어렴풋하게나마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 듯 하다.


겁내지 말라고,

아빠는 우리 가족들과 오래오래 함께할거라 말했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언제가는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현실이 될 그 날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뻐근하다.


문득 나에게도 가까운 이들과 이별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그들의 머릿속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기억할까.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떠나는 이에게는 육체와 정신의 소멸도 두려운 일이지만,

잊혀진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두려운 일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

더 이상, 세상 어느 누구도 그(또는 그녀)를 추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또는 그녀)가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 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평범한 삶을 살아간 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하게될 순간.


흔히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망각의 다리', '망각의 강'을 건넌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게 되면 현생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고, 또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긴 시간의 흐름에서 생각해보면

세상을 떠난 이 만 '망각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이들이 '시간'이라는 흐름 앞에서 함께 '망각의 다리'를 건너게 됨을 알 수 있다.

결국은 모두가 잊혀지는 것이다.


다만, 함께 세상을 살아간 이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이들이

조금 더 좋은 모습으로,

조금 더 오랜 시간동안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

인간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소원이 아닐까.


나 역시 그렇다.

언젠가 나는 떠나겠지만,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좋은 모습, 좋은 기억으로.


이렇게 봤을 때,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분의 모습을 떠올리고 추억하는 아들이 있다는 점 때문에 아버지의 운명이, 삶이, 결국에는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에서 만난 동생인 故송민종 군의 죽음도

짧은 슬픔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축복받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아주 오랜시간, 좋은 기억으로 남기려 한다.

노력하겠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는 떠났지만, 기억 속에서 언제나 추억할 수 있는,

기억 속에서 영원히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동생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가 떠난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평소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놀랍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미안해하지 않겠다.

아주 오랜시간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하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추신. 형도 치맥 좋아한다. 나중에 형이랑 연지누나랑 다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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