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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야하는 이유 찾기

다만 큰 아이는 고작 7살이지만. 수 없이 많은 입시를 치른.

어제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 이었다. 여전히 수능날이면 아침부터 언론사에서 각종 수능시험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직 수능성적만을 놓고 입시결과가 결정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수능성적이 아예 필요없는 전형도 많고, 최저등급을 요구하는 전형도 많아졌기 때문에 '수능시험'의 무게감이 과거에 비해서는 가벼워졌다.(아, 물론 입시업계에서 '정시파이터'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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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교사시절 가르쳤던 제자의 입시를 돕기 시작하며, 입시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입시관련 업무를 한 것이 2021년이었으니까 7년 이라는 기간동안 아이들과 입시를 함께 준비했다. 수시 지원 상담, 자기소개서 컨설팅, 생활기록부 컨설팅 등 '수시 전형'과 관련된 일들을 주로 했는데, 이 기간 동안 대학에 보낸 학생의 숫자는 아무리 못해도 700~800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1332926277047--.jpg 20대 교사시절. 이때가 좋았지.

2021년 여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학부모의 요청을 끝으로 더 이상 입시 관련 업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지쳤다. 처음 입시 관련 업무를 시작할 당시에는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때문에 주요한 입시정보나 노하우를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기도 했고, 덕분에 입시업계에서 조금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학생보다는 '요행'과 '비법'을 바라는 학생들이 많아지며, 일에 대한 보람이 사라졌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더 이상 입시관련 업무를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고, 딱 거기까지 였다.


인간의 두뇌라는 것이 참 무섭고도 단순한게, 입시관련 업무를 중단한지 3년 정도 되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입시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졌다. 입시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대해서도 무뎌졌고, 오히려 요즘은 '내 아이 하나만 제대로 키우자'는 정도로만 교육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입시에서 한발 떨어져서 보니, 이제서야 '대학교육'이 보인다. 그토록 오랜기간 동안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던, 수학능력시험이, 대학입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녀의 좋은 시험결과를 위해 어제도 대구 팔공산에는 많은 학부모님들이 모였다는 기사를 보며, 2024년 시점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전체 학습자를 '일반화'할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니다. 뭔가 학문적 목적이나 순수한 학문탐구에 대한 의도를 갖고 대학교육을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글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도 있다. 이 글은 그냥 그냥, 막연히 '대학은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 수 도 있으나, 지금이랑 별반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2001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하는 기간 앞뒤로 한학기씩 쉬었고, 2008년 2월이 되어서 '사회인'이 되었다. 전공과 딱맞는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해서 사회교사가 되었으니 전공 그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학교에서 접하는 교육과정, 학급경영, 평가관련 업무 등은 대학의 강의실과 임용고시 대비 사설학원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그대로 였다.(아, 물론 '생활지도'부분은 필드에서 새로 배웠다. 당시만 해도 체벌이 허용되던 시기고, 20대 남자 교사는 무조건 빠따를 휘두르는 역할을 해야해서 '무섭고 폭력적인 교사'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제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는 것은 딱 '학교'까지였다. 교사를 그만둔 이후 접했던 일들은 '대학교육'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오히려 교직현장에서 새로 배운 지식과 노하우가 더 활용도가 높았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17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전혀. 단 1도.


다만, '대학생 시절'에 했던 '생활모습'이나 '태도' 등은 아직까지도 내 삶의 여러 곳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해야할 일들의 순서를 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챙겨야할 것들을 나열하는 것.

그 중 문헌자료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때,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가서 자료를 찾아보는 것.

만일 자료가 논문일 경우 인터넷으로 관련 논문을 뒤져보는 것.

그때 당시에는 SNS라고 할 것이 '카페' 밖이었지만, 다양한 SNS창구를 이용해서 '나'를 알리는 것.

운동을 생활화해서 일주일에 아무리 못해도 3회 이상은 운동을 하는 태도 등.


이런 것들은 대학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고 익히기 시작한 것들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배웠던 학문적 내용 중에는 '이미 흘러간 과거'의 내용이 된 것도 있고, 아직도 현실화 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공론장'이라는 단어는 모를지언정, 누구나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서 생각을 밝힐 수 있다. 극단적이라도 될 만큼 자유롭게. 반대로 '다문화교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는데, 이제서야 우리 사회는 '다문화교육'에 현장적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학문적 지식'은 굳이 그 시절 대학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어디서든 정보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대학교육을 통해서 '지식'보다는 '태도'를 배웠다.



우리 아이는 '대학'에 가야할까?, '대학생'이 되어야 할까?


자, 그럼 여기서부터는 관심의 초점을 '우리 아이들'에게로 옮기겠다.

아빠 엄마를 쏙 빼닮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 딸 아이. 절대 예술이나 체육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 같지 않다. 둘 다 똘똘하긴 하지만, 벌써부터 '의대 꿈나무'라는 싹이 보이지는 않는다.(피그말리온 효과를 잘 알고 있지만, 확률상 물려받은 유전자를 뛰어넘는 아웃풋이 나왔으면 하고 기대하는건 욕심이다.)


엄마를 닮아서, 특정 학문에 대한 공부 욕심이 있다면 대학에서 '끝'까지 공부하는 것이 맞다. 인생 경험상 학문분야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학맥'을 무시할 수 없더라. 그래서 더더욱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한다. 그 집단 밖에서는 전혀 모르는 '교수님의 파워'라는게 엄연히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도 않다면?

아빠를 닮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어른으로 자란다면? 이 아이에게 대학교육은 필요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필요하다'이다. 그것도 반드시.


솔직해지자. 더 이상 대학교육은 '진리의 상아탑'운운하는 단계가 아니다. 학력 인플레가 발생해서 '박사'가 아니면 취업이 잘 안되기 때문에, 지원요건에 '석사 이상'이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억지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학문적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비율은 몇 퍼센트나 될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만큼은 '먹고사는 문제'와 '대학교육'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슬슬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대졸지와 비대졸자간에 연봉차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오히려 어중간한 대학을 졸업한 경우보다 특성화고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우가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경우도 많다. 결국, '대학 나와야 돈 더 번다'는 논리는 점차 신뢰를 잃게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애에서 딱 그 시기에만 배울 수 있는(체화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태도만 놓고 봐도 그렇다. 뭔가 삶을 송두리째 뒤엎을만한 경험을 하지 않는한, 4~50대에 생활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경우는 없다. '초기 성인기'(그냥 내가 만든 용어다. 대충 19세~24세 정도 또래)에 형성된 생활태도, 사고방식, 문제해결방식, 상호작용방식 등이 거의 그대로 남은 생애 동안 지속된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뭔가 잘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보다는 '대학생 신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실패', '실수'해도 용서가 되고, 이후 금방 다시 원상회복할 수 있는 신분이 바로 '대학생'이다. 청소년기를 마치고 바로 사회인이 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을까. 혼자서 배워야할 것이 얼마나 많을까.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공부하는 시기가 '대학생' 시절이다. 더 나이먹고 이걸 그냥 뒹굴뒹굴 거리며 스스로 익히겠다고 하면 '백수'취급 받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회인'이 되는 순간 모든 행동과 결정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얄짤없다.


나는 '청소년'에서 '사회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종의 '완충장치'로 '대학생'이라는 시기가 있었으면 한다. 실수해도 되는,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은.

직접 경험하며 배워야할 것들, 이를테면 인간관계에 대한 공부, 실물 경제에 대한 공부, 성장과 자기계발에 대한 공부, 취향에 대한 공부, 특정 학문분야에 대한 공부 등을 조금은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시기. 그게 바로 '대학생 시절'인 것이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학'에 입학을 해야하는거고.


"이런 안전장치가 필요없다, 나는 바로 실전에 뛰어들어서 배우겠다"면 딱히 '대학입학'을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아플 수 있다. 많이. 오랫동안. 심하게.


그렇다면, '아무'대학이나 가면 되나? '대학생'만 되면 되니까??


이왕 비슷한 비용을 지불한다면, 이왕이면 환경이 좋은 대학이었으면 한다. 다만, '자연환경'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말이 나온김에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대학 환경'을 적어보면,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물질적 환경,

생각과 고민의 깊이가 비슷하거나 더 깊은 사람들로 구성된 인적 환경,

거기다 여러가지 편의 시설이 깨끗하게 잘 갖춰진 환경이면 좋겠다.


젠장.

적고나서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인서울'밖에 안 떠오르네. 구구절절이 썼지만 결국은 '우리 아이는 인서울대학 갔으면 좋겠어요'라는 의견에 대한 뒷받침 역할만 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기대를 하는건, 큰 아이가 이제 고작 7살이라는거다.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쯤되면 뭔가 또 더 달라져 있겠지. 아무튼, 올해 수능시험 친 수험생, 학부모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참, 그리고 수능시험은 안쳤지만, 세상을 향해 첫발 디딜 준비를 한창하고 있을 청소년들도 올 한해 수고했습니다!

KakaoTalk_20241115_120331885.jpg 요녀석들 언제 키우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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