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알려준 너에게
올해 여름에 미국으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아이가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일명 '야구 여행' 이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을 끼워 넣어 준 남편에게 무한한 감동을 받았던 여행이기도 했다.
'미술관'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대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대학교 2년 마치고 2년 정도 휴학을 했었다. 다시 복학을 했을 때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수업도 혼자 듣고, 밥도 혼자 먹고, 스터디 구해서 공부하러 다니고 그냥 그렇게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4학년 마지막 학년을 남겨놓고, 수강신청을 하려는데
내가 복학해서 다닌다는 걸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동아리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너 그림 좋아해?"
뜬금없는 저 문자에 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싫어하지는 않는데, 좋아하지도 않아."
"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발표도 해야 하는 것 같고 괜찮으면 같이 들어볼래?"
마침 3학점이 남았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답을 했다.
"응"
이라고.....
취업 준비를 앞둔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수업이긴 했지만, 그냥 학점이 남아있으니까 들어보자 싶어서 신청했다.
첫 번째 수업날 꽉 들어찬 그 강의실이 너무 신기했다.
관심 있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나 보네 하고 말이다.
그 수업은 철학과 전공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왜 철학과에서 그 수업을 진행했는지 100% 이해는 못하겠지만
고대 서양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종교적인 색채가 아주 진해서 철학이랑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말이다.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1회에 그 동시대의 작가들의 그림을 띄워놓고 그려진 시대적 배경, 담겨있는 의미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시던 교수님
수업이 거듭될수록 그림을 바라보고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고, 이미 해석해 놓은 것 말고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니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도 굉장히 흥미 있었다.
사실 예술이나 문학은 이미 정해져 있는 해석 틀 안에서 내가 정답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였고,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4학년 우연찮게 연락온 친구와 함께 들었던 그 2번의 수업, 그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늘 가까이에 있고, 어떤 기법과 배경을 해석해 놓은 것이 반드시 정답이고, 암기하고 무조건적일 필요는 없지만 내가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줄 수는 있다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나는 벽을 허물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영향인지 나는 아직 맘에 확 들어온 나만의 원픽 그림이 있다기보다는
'화풍'을 좋아하는 시대가 있다. 하나의 그림도 매일 받아들이는 나의 감정은 다르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가, 다른 날은 나에게 슬픔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나는 적어도 미술에게만큼은 열린 결말을 허용했다.
사실 지금은 미술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모든 일에 그러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다.
'수학의 정석'처럼 혹은 내가 전공했던 '회계'처럼 정해져 있는 답이 있는 부분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말이다.
처음엔 그 일이 너무 고되고 어려웠다.
'왜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거지?', '이런 일은 나에게만 발생하는 걸까?'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어려움 없이 척척 해결해 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저 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채 그동안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것뿐이다. 나 혼자만 특별하게 겪는 일은 없다.
10대처럼 '정답'을 향해 쫓아가기보다는 20대, 30대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나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속도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미술작품을 보듯이 말이다.
천천히 그리고
나의 속도에 맞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