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니, 이게 뭐야?"
아이가 1학년 사진을 반 사진을 가지고 왔을 때 내가 처음으로 내뱉었던 말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반반 섞여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7~80%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
20명의 아이 중에 5명이 다른 인종이고 15명이 같은 인종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남편 따라오면서 그래도 생각한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은 다인종이 모여서 더불어 사는 나라 이 부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아이가 클 수 있다는 점
근데 그게 무너졌다.
남편과 상의를 해야만 했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아이 학급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왔는데, '라마단' 수업을 진행한 사진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아이가 가끔 반에서 친구들끼리 '영어'가 아닌 친구들 말을 한다고 했을 때도 신경이 쓰였었는데, 이번에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선택지는 고작 3개뿐이었다.
1. 이사 가기
2. 돈을 주고 사립학교를 보낸다
3. 가톨릭 학교를 보낸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금전적인 부분에서 주저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 비정상적으로 올라버린 렌트비용은
주재원 주거지원비용 한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사립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사립학교는 아무리 주재원 자녀 교육비가 지원된다고 하더라도 커버가 가능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 중에 한 명만 세례를 받으면 되고, 학교에서 교리 수업은 20분씩, 기도 3번 한다는 점이 나를 망설이게 했던 부분이다. 나도 종교는 누구보다 싫었고, 인도인 피하자고 애를 가톨릭 수업을 듣게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그런데, 80% 이상이 동일 인종인 학교는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나는 장고 끝에 가톨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외할머니가 성당생활을 독실하게 하시긴 했지만, 엄마나 나는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성당.
이번에 내가 가게 되었다.
"뭐라도 남겠지."
남편과 내가 했던 대화의 마지막이다.
그래 사람이든, 영어든, 아이가 행복한 학교생활이든 뭐라도 남겠지.
학교 주소지 반경에 있는 성당을 가야 하기 때문에, 신부님과 상담을 하고 내가 내년 세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이의 학교를 옮겼다.
나는 지난주부터 세례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학년 첫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나에게
"엄마 그전 친구들보다 훨씬 nice하고, kind 해."
"그래? 어떤 점이 가장 좋아?"
"친구들이 영어만 써!"
'영어만 쓴다' 저 말이 나에게 얼마나 크게 와닿았는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지난 학교생활이 조금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가톨릭에도 인도는 존재한다. 그들도 종교의 벽을 깨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 받아들이자'
내가 늘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깨끗한 인도'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작년 이민국가 수만 봐도 27%는 인도가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를 자랑한다.
이러다가 인도가 지배할 수도 있겠다고 엄마들끼리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느끼면 간담이 서늘할 만큼 섬뜩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특정 인종이 물밀듯 들어오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유함, 다양성이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보니 오기 전 유학원, 유튜브 등에서 말한 캐나다와 현실의 캐나다는 다른 것 같다. 일부분은 맞지만, 다른 측면은 너무 환상적인 이야기들로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어디든 여행이 아닌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건 늘 예상치 못한 변수와 여유롭지 못한 생활이 존재하고 있는 건 맞다.
특히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도 살아내는 것이 힘든데 모든 것이 낯선 외국은 그보다 몇 배는 심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캐나다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 180도 다른 삶이긴 하다.
연락하는 친구들은 나에게 '네가 부럽다'라는 말을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격차가 있기에 그 말에 대답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내 이야기를 일일이 설명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모두가 나를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현재 이런 삶을 살고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그다음에 받아들이는 건 본인의 자유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