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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위로바다 Jul 10. 2024

신입사원의 퇴사일지

적응을 해도 적응이 안되는 곳

신입사원의 퇴사일지


2024년 4월 퇴사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난 느꼈다.     


‘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물론 이번 퇴사가 처음은 아니다.

2018년 군대를 전역한 후 휴학하고 주상복합 오피스텔 단지에서 3교대 보안대원으로

1년 4개월을 보낸 후 퇴사했다.

그 후엔 코로나가 터지면서 계획했던 모든 일이 무산되어 ‘집’ 보안대원으로 1년을 보냈다.

나는 취미이자 꿈으로 인디 음악 활동으로 노래를 했었는데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앨범 발매를 위해 모아둔 돈은 대부분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로 사용되었다.

여행은커녕 사람들조차 만나기 힘들어졌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커져 나는 매일 술을 마시면서 현실에서 도피했다. 나는 이때를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 부른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새롭게 디자인 기술을 배우고 취업했지만 다시 퇴사했다.     


나는 IT 중소기업에 영상편집자로 입사했지만, 마케터로 2년 동안 일했다.

사회초년생으로 팀원들과의 소통, 의견을 제시하며 주체적으로 일하는 법, 고객을 대하는 방법 등등 배울 점이 많았다.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촬영과 라이브 방송, 행사 사회자까지, 그전까지 해본 적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인정받았다. 집에서 메신저로만 소통하고, 컴퓨터로만 일했던 프리랜서 때와는 다른 성취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퇴사한 이유는 직장 내 흔한 괴롭힘, 낮은 연봉, 번아웃 등 그 어떤 것도 아닌 ‘나의 불만족’이었다.     


‘경력을 위해 2년 이상은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었다. 갈수록 회사의 방향성이 오로지 ‘매출’에만 집중되어 갔기 때문이다.     


회사의 단기 이익을 위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업무들만 반복해야 했다. 전화로 문의하는 고객들에게는 물품을 팔아야 했다. 회사에서 마케터로서 퍼포먼스를 위한 기획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것이 나의 성장판이 닫힐 거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일에 흥미를 빠르게 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1호선 지옥철은 말 그대로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나태 지옥(끊임없이 불 바퀴가 돌아가 그 지옥에 빠진 이들은 하루 종일 불 바퀴를 피하려 달린다)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 회사에는 롤 모델로 삼을 사람이 없었다.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영상편집자와 디자이너는 나 혼자였다.

디자인 기획을 시작하기 전에 디자이너는 만들어야 할 이미지의 정확한 크기, 혹은 요청자가 원하는 구체적인 방향을 알아야 한다. 영상 편집은 촬영본, 시나리오 대본, 디자인 소스라는 재료를 동반한 나름의 기획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모두 생략되고 “빨리 만들어줘, 느낌 알잖아?”라는 식의 주먹구구 지시가 많았다.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머리를 싸매며 빨리 처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케팅과 고객 상담 및 영업까지 해야 했다. 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지만, 전문성 없이 이곳저곳에 발만 살짝 담근 상태였다. 내가 모든 콘텐츠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도맡아 하면서 회사의 입맛에만 맞춰야 하니 실력 상승이 없었다. 갈수록 나는 수정만 약간 하면 완성되는 템플릿을 활용하여 공장처럼 작업물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편한 방식으로 일하면서 나는 시나브로 도태되고 있었다.     

흡연장인 옥상은 직장의 수많은 가십, 정보,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상사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아찔했다.

“내가 여기서 8년을 일했는데도 주먹구구로 일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아.”

“애사심을 가지고 일했던 많은 사람이 결국 상처만 입고 떠나갔어.”

“결국 우리는 부품이고 삐걱거리면 교체되기 마련이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힘이 쭉 빠지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 3~5년 후 모습이 이들인 걸까?’     


결국 나는 퇴사했고,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많은 이들이 ‘도피성 퇴사는 하면 안 된다.’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퇴사 후에 삶을 계속해서 나름대로 그려 나갔다. 노션으로 계획표도 만들고 포트폴리오 제작에 힘썼으며 새롭게 하고 싶었던 일들, 배우고 싶은 일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사람은 편한 것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고 초심을 잃고 게을러진다고 했던가?

퇴근 후 도파민을 일으켰던 나의 취미 활동은 2주 정도가 지나자 너무 익숙해져 별 감흥이 없어지고, 빛이 나던 노션 계획표에 마지막 로그인을 언제 한지도 모르게 돼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퇴사 일지를 다시 기록해서 그때 내 감정을 마주하려고 한다.     


‘대 퇴사 시대’ 속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지금 퇴사를 고민하거나 나처럼 퇴사한 사람,

심지어 사원들의 잦은 퇴사가 고민거리이고, 직원들이 퇴사하는 이유를 찾는 중소기업도

생각해 보는 글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시간은 2년 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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