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보다 더 멀었던 나 자신과의 거리
해가 진 뒤에야 눈을 뜬다.
잠결에 켠 핸드폰 안엔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
쏟아지는 메시지, 짧은 리액션, 빠른 호흡의 말들.
그 속도에 난 자꾸 겁이 난다.
누구는 분노하고, 누구는 확신하고, 누구는 자랑한다.
나는 그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같다.
코로나라는 단절의 시기.
모두가 힘들다 했지만, 나에겐 오히려 괜찮은 핑계였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고, 애써 어울리지 않아도 되는 것.
그건 잠시 마음을 편하게 해줬지만,
어느새 너무 깊게 들어와 버린 것 같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미래를 상상할수록 멀미가 난다.
불안이라는 단어는 이제 익숙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만 늘어나는 어린애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이 기회야.
실패해도 괜찮아.
근데 그 실패의 원인에 나 자신이 있다면,
괜찮지 않은 건 결국 나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된다.
사람도, 대화도, 스스로에 대한 기대조차도.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가끔은 나도 위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 내게 위로를 건네면,
그 진심을 의심하게 되는 내 모습이 싫다.
"다 똑같이 힘들어."라는 말이 나에겐 아무 위로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른데, 어떻게 같은 말을 들려주는가.
기쁨을 나누면 질투를 받는다.
슬픔을 나누면 약해 보인다.
결국 드러내지 않는 게 정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같겠지만,
SNS 속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올릴 사진도, 나눌 감정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익숙한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은 비어 있다.
"잘 지내?"라는 무성의한 안부 문자.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진심은 어디쯤 있을까.
편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관계들이
의외로 내 감정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자꾸 숨어든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글조차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