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앵두 Nov 01. 2019

너를 응원해#1

#1 사춘기 빨리 가라~

"쌔애애애애앰~~~"

문을 열자마자  냅다 나를 불러제낀다. 저러는 애는 한 명 밖에 없다. 연미다.

"아 왜! 너 내가 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너 또 숙제 안 해왔지?"

연미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숙제를 안 해오거나, 공부할 교재를 안 가지고 와서 나를 기함시킨다.

그럴 때면 늘 큰소리로 나를 부르짖으며 공부방에 들어선다. 오늘도 그랬다.


"아니에요. 저 숙제 해왔단 말이에요!"

"그럼 왜 호들갑인데?"

"있잖아요. 오늘 아침에 말이에요."

또 시작이다. 말폭탄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으려나.

"어제 역사 수행평가 숙제를 했거든요. 그걸 USB에 담아 가야 하는데, 깜빡하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자알 하는 짓이다!"

"아, 쌤! 깜빡할 수도 있죠~~ 그래서 아침에 하려고 하는데 USB가 안 보이는 거예요. 엄마한테 내 USB 어디 있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갑자기 막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는 거예요."


이쯤에서 나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무척이나 심각한 애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아니. USB 어디 있냐고 물은 것뿐인데, 찾기만 하면 2분 이내에 숙제 다 담을 수 있는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

나는 이젠 끅끅대면서 웃기 시작한다. 몰래 웃기는 진작에 포기했다. 쌤이 웃거나 말거나 연미는 할 말이 많다.


"USB 때문에 열이 받았으면 그 얘기만 하면 되는데, 옛날 일 까지 다 끄집어내서 네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뭐냐면소리를 질러요. 숙제도 제대로 못 챙기니 공부를 어찌하겠냐고 막 성질내요. 초등학교 때 학원 숙제 안 해갔던 것도 얘기해요."

낭패다. 나는 이미 낄낄대기 시작했다.

"음음.. 대박대박. 네가 대박 잘못했네. 그 전날 해놨어야지. 왜 그 바쁜 아침에 그걸 한다고 그래. 아침에 엄마들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는지 알아?"

"아니, 엄마한테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있냐고 물어본 것뿐이잖아요. 도대체가 어디서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야. 나도 우리 애들이 전날 준비물 안 챙겨놓고 아침에 어딨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화나거든?"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잖아요."

"야.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지. 내 새끼가 학교 갈 때 필요한 건데 못 찾거나 못 챙겨주는 게 엄마한텐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알아? 그래서 학교 갈 준비 미리 전날 다 해놓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그럼 그거 가지고만 잔소리를 해야지. 왜 시시콜콜한 옛날 얘기를 다 끄집어내고 지....."

연미가 흠칫하며 말을 멈춘다.

"지랄이냐고? 저 가스나 엄마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좀 봐라."

지도 잘못한 거 안다. 연미는 헤헤거리며 웃는다. 밉지 않다.


연미는 그 무섭다는 중2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정의 파도가 심하게 휘몰아친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욱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의 대화는 욕이 생활화되어 있다. 거리에서 지나가는 중학교 아이들의 대화는 욕에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 심지어는 엄마와 아빠를 XX년, XX놈으로 얘기하는 애들도 많다. 그 속에서 '지랄'이란 말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미의 의미 없는 말 습관임을 나는 안다. 마음이 나쁜 아이는 아니다. 진지하게 "엄마한테 그런 말 쓰면  못써."라는 식의 충고는 아이의 입을 막아버린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움츠러든다. 아이가 불만을 토로할 때는 일단 들어주는 게 상책이다.


"아니. 학교 태워다 주면서도 계속 소리소리 질러대더니 핸드폰도 다 내놓으래요. 또 압수한대요. 아. 짜증 나 죽겠어요."

"잘됐네. 핸드폰 뺏기고 공부나 좀 해라."

"아. 쌔애앰~~~"

"자 시끄럽고! 숙제 펴서 올려놔. 채점하게."


채점을 시작하며 슬쩍 말을 건다.

"집에 가서 개기지 마라. 이차전 가봤자 니만 손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가 잘못해놓고 어따대고 지가 승질이야. 그러다 니 뒤지게 맞는다~ "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연미 엄마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저 오늘 피시방 갈 거예요. 집에 안 들어갈 거예요."

"그래~가출해. 꼭 해. 뒤지게 쌩고생도 해봐야지! 너 가출 안 하면 나한테 뒤진다!"

미가 쿡쿡 웃는다. 지지배. 이제 마음이 풀렸나 보다.


나는 심리학이나 상담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당연히 상담기법 같은 거 나는 모른다. 애들이 속상한 걸 얘기하면 쿡쿡 대면서 웃을 때도 많다. 참 나쁜 선생이다. 아이들의 고민 앞에서 어떤 충고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많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열심히 들어준다. 아이들은 열심히 얘기한다. 신기한 건  열심히 얘기하고 나면  화가 나있던 아이도, 토라졌던 아이도 얼굴이 편해진다는 것.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아무 경계심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거구나.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구나. 오늘도 또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한창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게 뭔지.


"숙제 꼭 해오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개기지 말고 쥐 죽은 듯이 있어!"

"저 가출할 건데요?"

해맑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말을 남기고 해맑게 웃는다. 다행이다. 마음이 풀렸나 보다.

연미는 집에 가서 뒤지게 맞진 않을 듯하다.

오늘도 내일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와라. 연미! 중2병은 좀 빨리좀 내보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