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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Apr 10. 2024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네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가 100일쯤 되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날이 참 좋았고 지는 해가 아름다웠다. 내가 그런 저녁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건 장을 보러 마트에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었다. 먼 지역에 사는 친구라 자주 보기는 좀 어려운 그런 친구였다.

"오,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그냥 네 생각나서 전화해 봤어."

"애기는 잘 크고?"

"그럼 쑥쑥 잘 자라지."

"애기 어때? 예뻐?"

"너무 예뻐. 내가 지금껏 세상에서 가진 것 중 이렇게 소중한 게 있었나 싶을 정도야."

"그래? 그 정도야?"

그 후에도 친구가 아이에 대해서 한참 물어왔다.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굴 닮았는지 등등.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면서 계속 아이 얘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잘 지내냐고 물었다. 친구는 잘 지낸다고 답하고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어왔다.

"너는? 너는 잘 지내?"

그냥 내가 먼저 물었으니 되묻는 의례적인 안부 인사였는데 갑자기 그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다. 마트에서 소시지와 우유를 집으면서였다. 울먹이며 잘 지낸다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친구가 당황해하며 정말 잘 지내는 게 맞냐고 되물었던 기억도 선명하다.


수면 부족이라 그랬던 것 같다. 새벽에도 분유 먹이러 몇 번씩 깨던 때였다.

날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초가을 저녁 날씨는 상쾌하고 포근했다.

다들 애기 얘기뿐인데 갑자기 내 안부를 물어와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폭발했으리라. 그저 갑작스러운 울음에 대한 내 변명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생겼다고 말하면서도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울먹이던 나를 보며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고민해 봤을까?


'결혼하면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이런 문화인 시절도 있었더랬다. 우리 엄마만 해도 나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라는 구심점이 없으면 부부 생활이 느슨해질 거라고 강조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부모님 세대 때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딩크로 살더라도 부부가 함께 즐기고, 배우고, 놀거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 낳기를 추천하고 싶다.


흔히 결혼하게 되면 삶이 안정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만으로는 그다지 커다란 안정감을 느끼진 못했다. 반면에 아이는 나에게 단단하고 확고한 안정감을 주었다.

드라마 도깨비 대사에 그런 말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 떠밀어 준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간 순간이다."

신은 그리 하는가 보다. 눈치 채지도 못하게 부드럽게 등을 밀려나? 그러나 아이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틈도 없게 나와 세상을 칭칭 묶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순식간에 내 중심에 들어섰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은 내 인생의 중요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건 그전에 아내와의 연애나 로맨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나 스스로가 기꺼이 매달아 놓은 모래주머니였다. 걸음이 신중하고 무거워졌으며 행동반경이 작아지면서 자연스레 일의 우선순위가 빠르게 정리되었다.


아이로부터 받는 사랑도 그런 안정감에 힘을 보탠다.

내가 아이의 세상이 되어주는 것처럼 아이 역시 나의 세상이 되어 준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나를 보며 웃을 때도,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달려와 내 손을 잡아 끌 때도, 말짓을 해서 혼나면 짜증 내며 엉엉 울다가도 다가와서 품에 안길 때도, 나는 아이의 사랑으로 가득 찼다. 14kg짜리 묵직한 안정감이 매일 달려와 가슴에 안겼다.


또 동시에 육아는 커다란 도전과 모험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키워가는 과정은 나 또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대면하는 길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 책 몇 권을 읽었고, 유튜브 채널 몇 개를 정주행 했지만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일들 투성이었다. 이유식 반찬, 육아 휴직 시기와 같은 구체적 문제들과 육아관과 바른 부모상과 같은 추상적 고민거리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억지로 문제와 고민들을 짜내는 게 아니다. 끼니마다 아기 옷이 반찬으로 물들고, 아이가 계속해서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린다면 구태여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고민은 자연스럽게 치열해진다. 그리고 깊어진 고민들은 자아를 극복하게 만든다.


 겁쟁이 아빠라는 시를 쓴 적 있다. 시 내용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가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겁쟁이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무서운 게 없던 나보다 겁쟁이인 지금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부모가 된다는 건 수많은 불안과 걱정을 헤쳐나가야 하는 일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갈무리해야 한다. 동시에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마인드컨트롤과 동기부여가 동시에 된달까? 궁극의 자기 계발이다. 어른들이 괜히 애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둘째를 가지고 싶다. 겁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둘째가 생기면 나의 삶은 더 다채로워지고 넉넉해져서 결국 행복하리라.  

인생은 한 번 뿐이지 않나? 각자 선택이 다르더라도 난 그저 모두들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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