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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Apr 15. 2024

잘하고 못하고에 집중하지 마

수학은 잘하는데 체육은 잘 못해요

체육 수업 시간이었다.

얼티미트 프리즈비라는 스포츠의 변형 활동을 할 계획이었다. 얼티미트 프리즈비는 플라잉 디스크를 날려 엔드존에 터치다운하면 득점하는 게임이다. 어린이들에게 플라잉 디스크를 활용한 경기는 너무 어려워서 공으로 대체하여 활동한다. 공을 패스하는 능력을 길러주기에 좋다.


교실에서 게임 방법을 안내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준비운동이 끝나고 팀을 나누기 위해 줄을 세웠을 때였다. 높은 하이톤의 G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트롤해야지!"

트롤은 일부러 팀의 플레이를 망치겠다는 뜻이다.

"선생님, G가 일부러 트롤한대요! 저 얘랑 팀 안 하면 안 돼요?"

Y가 불만을 호소한다. Y를 달래고 어린이들에게 가벼운 연습 활동을 시켰다. G를 따로 불렀다.


"네가 일부러 트롤 할 거라고 말한 게 사실이니?"

"아뇨, 저는 진짜로 트롤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니?"

"그냥요."

"네가 그렇게 말해서 Y는 화가 났어. 네가 계속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과 관계가 안 좋아질 거야. 그러길 바라니?"

"아니요."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선생님은 네가 열심히 참여했으면 좋겠어."

그런 말로 G를 돌려보냈다.


G가 학기 초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수학은 잘하는데 체육을 잘 못해요."

G가 그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깊게 파고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친구들에게 체육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불안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G는 자신이 체육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못하는 척하는 거라고 친구들을 속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반대로 수학시간이 면 G는 좀 더 수다스러워졌다. 수학 문제를 금세 풀고는 혼잣말이라기엔 좀 큰 목소리로 "다 풀었다."라고 말하곤 했다. 문제를 푸는 도중이더라도 "3번 답은 15고, 4번 답은 12네? "하고 말하기도 하고, 그 끝에 아주 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항상 혼잣말이 좀 컸다.


G만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리코더 연주가 어려운 S는 음악 시간이면 자신의 못함 뒤로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림 그리기에 자신이 있는 P는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려 다른 친구들 보여주기에 바쁘다.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종종 그것에 너무 집중해버리고 만다.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면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 한다. 자신이 못한다고 생각하면 주눅 들어 시도하길 꺼린다. 자만하거나 위축되거나. 이진법이다.


오늘 국어 수업이 일찍 끝났다. 아직 수업 시간이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마침 담아두고 있던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선생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수업을 일찍 끝냈다고 둘러댔다.

"저는 때로 여러분이 무언가를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칠판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린다.

"저는 체육을 이만큼 잘해요."

그 아래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저는 수학을 이만큼 못해요."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요?"

유튜브에서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재생했다. ( 노래를 모르시는 분은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세상에는 여러분 보다 체육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까 그렸던 큰 원 양 옆으로 더 큰 원과 더 작은 원을 그렸다.

"세상에는 여러분 보다 수학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까 그렸던 작은 원 양 옆으로 더 큰 원과 더 작은 원을 그렸다.

"그뿐일까요? 그것보다 더 잘하는 사람도 많고, 더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이런 건 다 상대적인 거죠."

더 큰 원들, 더 작은 원들을 몇 개 더 그렸다. 원들이 많아져 처음 그렸던 원이 뭔지 헷갈릴 정도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큼 많고,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얼만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건 세어보지 않아도 엄청 많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럼 내가 뭔가 잘한다고 생각해서 느꼈던 감정들과, 내가 뭔가 못한다고 생각해서 느꼈던 감정들도 그다지 의미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럼 중요한 건 뭘까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여러분 자신이에요. 여러분이 뭘 할 때 행복한지, 뭘 배우고 싶은지, 뭘 더 열심히 하고 싶은지 이런 것들이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어린이들은 [부럽지가 않어]노래가 재미있다며 낄낄거렸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했을까? 너무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을까?

혹여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말 몇 마디로 뭔가 크게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말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이던 내 속은 후련했다.


그러나 브런치에 이런 내용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어떠한가?

내 마음은 교만하여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만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내 마음은 위축되어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쓸 때는 솔직해지겠다는 다짐이 나를 날카롭게 몰아세운다.

그 서슬 퍼럼에 놀라 대답을 머뭇거렸다.

역시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마음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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