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바다에 갔었습니다. 아이가 모래사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반응이 궁금했거든요. 발이 모래를 파고들면 모래는 스펀지케이크처럼 부드럽게 눌립니다. 모래가 부드러워서 꼭 발이 아니라 다리로 걷는 것 같죠. 아이의 신발 사이로, 양말 틈으로 모래가 들어갑니다. 아이의 손에서도, 무릎에서도, 입가에서도, 귀에서도 모래가 흘러나옵니다. 아이는 바다보다 모래가 더 마음에 듭니다. 아이가 노는 동안 바다를 바라봅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도 바다에 갔었습니다. 같은 바닷가냐고요? 그것도 낭만적인 일입니다만 바다는 어차피 다 연결되어 있으니 같은 바다를 본 셈 아닐까요? 나는 아내와 걸으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란한 발자국들을 보며 우리 결혼 생활을 꿈꿨으니까요. 나는 언젠가 뒤돌아보면 그 모든 발자국이 춤이길 바랐습니다. 이렇게 셋이서 바다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요. 셋이 걷는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찍힙니다. 아이는 가벼워서 발자국이 얇게 남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아이는 크게 웃고, 힘껏 뛰는 데도 발자국만은 얇게 남습니다. 내 안에서 아이의 발자국이 내 발자국보다 크고 깊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아이의 발자국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파도와 함께 모래가 쓸려왔다가 쓸려갑니다. 바다는 모래알에 담긴 발자국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이 지워지는 건 아쉽지 않습니다. 저 바다 깊숙이 쌓여갈 발자국들을 떠올려봅니다. 아이가 언젠가 어디선가 또 다른 바다를 만났을 때 바닷속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찍은 발자국들을 건져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저물고 우리의 바닷가 산책도 끝이 납니다. 꼼꼼하게 아이의 몸과 옷에 묻어나는 모래를 털어냅니다. 떠날 때 바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아쉽지 않습니다. 아직 털어내지 않은 모래알들이 바닷가에 무수합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잠을 자고 자동차 바퀴는 빠르게 회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