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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Sep 30. 2024

나: 답답함을 알아가는 과정

'완전히 달라진 나'는 나중에 보여줄게

이전 글에서 나의 답답함에 대해 소개한 적 있었다. 살아오며 나의 답답함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글을 쓰며 나의 답답함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익숙한 골목에서 모르던 맛집을 발견한 것이다. 글쓰기의 장점이다. 

비현실적 이상에 대한 고집스러움. 시스템이나 제도 대신 의식이나 문화에서 문제점을 찾으려는 사고 방식.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이기적 태도. 그게 내 답답함이었다. 깨닫고 나니 내가 꽤 자주 그런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깨닫고 나니 그것들이 부질없는 시간 낭비와 감정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어린이들 동시 지도를 할 때만 해도 그랬다. 전담 시간에 연구실에 앉아 우리반 어린이들의 동시를 하나씩 피드백해주고 있던 참이었다. 시를 읽고 잘 된 부분에 밑줄 쳐주고 좀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 표시했다. 마음에 쏙 드는 시들도 있었고, 좀 더 손보면 훨씬 좋아질 것 같은 시들도 있었으나 상당수 시들은 밑줄을 긋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칭찬할 마음이 들지 않아도 칭찬할만한 부분을 찾아 칭찬하는 것, 그게 내 일이다. 나는 계속해서 도리질을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었다. 

옆에 앉아있던 동료 선생님이 물었다.

"선생님 뭐가 잘 안 돼요? 왜 자꾸 한숨을 쉬어?"

나는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뇨, 어린이들 동시 쓴 걸 피드백 해주고 있어요."

"아이들이 시를 썼어? 대단해. 그런데 왜 한숨을 쉬어?"

"마음에 드는 시들이 몇 개 없네요. 시 쓰기가 좀 어려웠나봐요."

선생님께 투정부리듯 읽고 있던 시들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몇 개 시들을 훑어보셨다.

"선생님이 시를 쓰니까 시 평가 기준이 높은가봐. 길게 쓴 애들도 많은데? 나도 시 쓰기는 어려워. 나는 시 쓰기가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타고나는 거야,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그 순간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넘겼으나 따져볼수록 말이 맞는 같았다. 기준이 높았다. 진실우리반 모든 학생들이 좋은 시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가? 학생들마다 관심분야와 수준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반에 시적 표현 능력과 언어 감각이 뛰어난 어린이들만 모여 있을 가능성도 만무하다. 그러면서도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시들에 대해 실망하고 아쉬워하는 건 어리석었다.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보다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일 것이다. 나의 답답함을 깨달았으니 나는 이제 나의 단점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변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선종의 돈오점수가 딱 들어맞는다. 변화는 노력 끝에 천천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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