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들거나 남겨지거나
살면서 부모님과 가장 크게 다퉜던 건 대학 진학 문제였다. 내 어린 시절 꿈은 시인이었다. 나는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 같은 곳을 가길 바랐고 부모님은 내가 교대에 가길 바랐다. 엄마는 교사가 되어서도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겸업 작가와 전업 작가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반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반이 틀린 이유는 대부분의 시인들은 어차피 시인으로서만 살아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반이 맞는 이유는 그 세계에 뛰어든 사람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설거지를 할 때 유튜브로 니체에 대한 영상을 본다. 예도 TV라는 철학 박사님이 운영하는 채널이다. 손을 움직이는 조작활동을 하며 봐서 그런지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온다. 한 손으로 낙서를 하며 공부를 하는 두들링 공부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오늘 들었던 강의는 니체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다.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일찍 돌아가셨단다. 니체의 어머니는 니체와 니체의 여동생을 데리고 니체의 할머니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니체가 그 지역의 김나지움(우리나라로 따지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한다. 니체는 자신의 에세이에 기숙사 생활에 대해 기존의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기존의 종교적 관습은 아버지가 목사였던 집안에서 지켜오던 종교적 예절이나 습관 같은 걸 말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니체가 자유를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니체는 비로소 니체가 되기 시작한다. 그 시절 니체는 그리스 문학과 음악에 심취해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니체는 그리스 문학에 탁월함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들이 후에 그의 저서 활동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 세계에 뛰어든 사람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니체의 경우에야 뛰어들었다기보다 남겨졌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계에 푹 빠진 상태, 잠긴 상태. 깊숙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시를 배우겠다고 시 수업을 받으며 강독 텍스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시 세계에 겨우 발을 들인 건지, 발만 걸친 건지 아무튼 나는 아직 그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다. 빠져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아니, 모른다. 아마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호흡을 가지고 싶다. 나는 변두리에 있다.
내가 변두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빠져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 것처럼,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들의 세계에서는 일반인의 옷을, 일반인들의 세계에서는 시인의 옷을 반쪽씩 입고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수상한가? 재미있는 건 나조차 나를 수상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시를 배우면서 나는 시를 대하는 태도부터 관점, 시를 쓰는 방식까지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시에 대해 알게 되고 시를 즐기게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즐기는 게 아니라 즐겨야 한다고 압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나의 의식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 의심은 계속된다. '이렇게 시를 쓰는 게 맞을까? 이런 것도 시가 되는 걸까?' 의심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외롭고 괴롭다.
나를 변두리로 내모는 것은 무엇인가? 내적인 것부터 외적인 것까지 어디 한둘이어야지. 당분간은 시 세계의 변두리를 계속 맴돌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변죽만 울리다가 끝내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는 중심을 향해 뛰어드리라 다짐하며 미지의 시들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