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미루기

by 말미잘

한 달 후면 둘째가 태어난다. 설레는 일이다. 아이가 생기는 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값진 일이다.

최근 아내의 걱정거리는 뱃속에 있는 둘째가 아직 머리를 아래로 돌리지 않은 것이다. 일주일 전쯤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아이가 아래로 돌지 않았다며 염려하셨다. 다행인 것은 양수 양이 많아 아직 공간이 있기 때문에 조만간 돌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양이 자세를 자주 해 줄 것을 추천하셨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아내는 둘째도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고 싶어 했다. 첫째가 자연분만이었다면 둘째는 첫째를 분만할 때 보다 좀 더 아이가 쉽게 나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제왕절개 시에 몸에 칼을 대는 것도 싫은 것 같고, 회복 기간이 자연 분만보다 길어진다는 점도 싫어했다.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아내는 자연분만을 원했다.

아이가 점점 커지고 엄마 뱃속에 꽉 들어차면 더 이상 머리를 아래로 돌릴 수가 없다. 아내는 태아가 조금이라도 더 크기 전에 머리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산부인과에 다녀온 다음부터 집에서 열심히 고양이 자세와 의자나 벽에 무릎을 대고 상체를 기울이는 자세를 시도했다. 틈만 나면 운동을 했고 한 자세를 5~10분 정도 유지하기도 했다. 만삭의 아내가 그런 자세를 오래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고 또 동시에 불안해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음을 편안히 가질 것을 강조했다.

"이미 머리가 돌았을지도 몰라."

"아닐 수도 있잖아."

다음 산부인과 진료 날짜는 일주일이나 더 남아있었다. 머리가 돌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걱정해야 하는가?

"불안을 미뤄버려."

"불안을 미루라고?"

아내는 미심쩍어했다.

불안 미루기는 내가 자주 써오던 방법이다. 걱정스러운 미래가 예견될 때, 그 불안을 미래로 미뤄버리는 것이다. 지금 아내의 경우 아이가 머리를 돌리지 않았을 때 생길 문제에 대한 걱정을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날로 미룰 수 있다. 그동안 아내는 '모든 일이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 믿음만 가지면 된다.

재미있는 점은 불안 미루기를 한 후에 불안해하기로 한 미래가 다가왔을 때에는 이미 문제를 맞닥뜨려 불안해할 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음 산부인과 진료 날이 되었을 때 아내는 머리를 아래로 돌린 아이를 확인받고 안도하거나, 아직 머리를 돌리지 못해 제왕절개 등의 해결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 사이에 '아이가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불안은 끼어들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불안 미루기에도 나름의 방식이 있는데, 긍정적 미래에 대한 믿음에 더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테면 시험을 앞둔 학생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한다고 가정하자. 이 불안을 시험 점수가 나온 후로 미룬다. 그동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를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나의 불안 미루기는 될 대로 되라지 식의 포기가 아니다. 시험을 잘 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한다.

결국 내 불안 미루기는 마음 가짐의 문제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에 빠지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거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다.

며칠 후에도 아내는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전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언제나 불안을 미루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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