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지도 모르고 불안한 날들이 있다. 아침 출근길에, 산책하다가, 설거지하다가, 그냥 갑자기 문득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구체적인 불안은 미뤄버리면 그만이지만 왜 불안한지도 모르는 불안은 만질 수 없어서 그냥 그곳에 둔다. 그저 다가올 삶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게 어떤 삶인지 그리지도 못하면서, 그곳에 넘실이는 가슴 졸임이 있다. 미래는 시간 속에 불안을 휘저어 풀어놓고 무표정하게 그것들을 내게 흘려보낸다.
확실한 건 그런 가슴 졸임, 불안, 우울함들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밖으로 풀어내면 그만일 텐데 나는 그것을 밖으로 풀어낼 자신이 없다. 뭐라고 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확실히 아니다.
"나 지금 불안해."
"왜 불안해?"
"모르겠어. 그냥 불안해."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모르겠다는 말 뿐이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없는 감정은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
그럴 때는 밖으로 뭔가 풀어내려 하기보다 노래를 들었다. 조용하고 우울한 노래. 힘들고 뜨거운 노래. 서럽게 고백하는 노래. 그런 노래들은 계속해서 무언가 버리고 있는 느낌이고, 그런 노래들을 듣고 부르다 보면 금방 슬퍼지는데, 이상하게도 그래야 이 답답함에 손이 닿는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이름 없는 불안이 나를 쥐고 흔들고 나를 흩어내려 할 때 그런 노래들이 나를 꽉 묶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노래들을 모아 삶 끈이라는 제목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노래들은 내 감정이 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노래를 듣고 부를 때 나도 모르게 어떤 것들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종종 우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때로 뒤엉킨 감정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런 곳에서 탄생하는 시도 있을 것이다. 말이 멈추는 지점에서. 때로 사람들은 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애초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시가 됐을 수도 있다. 이름 모를 그것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가 되기도 한다.
내 시도 그렇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거리에 흩어져 누군가의 감정들을 녹여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