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은 여자와,
결혼(結婚)「명사」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돌이켜 보면 결혼을 꿈꿔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다.
나의 부모를 포함해서 주변에 결혼해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까.
그때는 그런 말이 없었지만, 한마디로 나는 '비혼주의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어린 비혼주의자는 어른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홀랑 결혼을 한다.
그때 내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유는 너무 많았고, 또 딱히 없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원해서였을 수도 있고,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였을 수도 있다.
한번 덮인 기억을 다시 꺼낸다고 해서 고스란히 그대로일 리 없지만, 하나 기억나는 건 있다.
결혼이 너무 성급한 결정인가 싶어 불안할 때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생각.
바로, 그가 내 부친과 너무도 다른 남자라는 것.
나는 그거면 되었다.
내 부친 같지 않은 남자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배우자를 선택해선 안 됐지만.)
이미 부모를 가족의 지위에서 끌어내린 내가,
가족의 지위에 두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때는 믿었다.
이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해도 도리는 없다.
내게도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서 잠 못 이루던 밤들은 엄연히 존재하니까.
그러나 그는 채 십 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 가족의 지위에서 내려갔다.
내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합의이혼'이라는 형태로 '곱게' 헤어졌다.
사실 그와 결혼을 결정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나와 결혼했다는 것.
각 잡고 커밍아웃을 한 건 아니다.
함께한 세월 덕에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의 '암묵의 룰'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 남자가 나의 연인이 되었을 때 나의 성향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적어도 이 남자는 속이며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점에서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첨언하자면, 나의 성향이 우리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은 아니다.
이유가 뭐든 간에 지나간 일은 붙드는 게 아니다.
이혼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