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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May 16. 2023

요셉의 길

별이 머무는 언덕 3-1

가끔은 이렇게 까닭 없이 슬픈 날이 있습니다.

'시시한 날에'  해와달 김선광 시집

한동안 맥주를 마시지 않았는데...... 배가 터무니없이 너무 빨리  부르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마시게 됩니다.  금방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더욱 슬픈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시한 날에'는 김선광 시집입니다.

배는 부르지만 마시고 또 마십니다. 시 한 편 읽고 또 마시고.......


시가 뭐겠습니까!

.

.

.

시인이 뭐겠습니까!

.

.

.

실은 저도 잘 몰라서....


김선광 시집 '시시한 날에'는 온라인서점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소설입니다. 굳이 안 읽으셔도 되지만 그건 꼭 누르고 가세요.



하루가 꼬박  지난 뒤에 라몬은 오락가락 의식을 붙잡고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넓은 이마와 높은 자존심처럼 오뚝한 콧날, 예리한 눈매, 무거운 입술과 허리까지 닿는 갈색고수머리. 친구 바라바가 틀림없었다.

바라바는 청년 시절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라몬은 바라바를 엊그제 동산에서 보았던 나사렛 사람 예수로 착각할 뻔했다.


그분이 찾아와 주었을 땐 청년 바라바를 떠올릴 수 없었는데 바라바를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사렛 사람 예수에게서 느껴지던 넉넉한 인품과 강한 신념 그리고 그 뒤에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우수가 바라바에게서도 느껴졌던 탓이었다.


예수나 바라바 모두 절망에 빠져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그분과 바라바가 같을 수는 없지. 예수가, 그분이 절망에 빠졌을 리 없잖아.'


라몬은 슬프고 불길한 예감을 애써 부인했다.




요셉은 살이 쪄서 못 알아볼 뻔했다. 하지만 인정스럽던 눈빛만큼은 세월을 거스르는 듯 그대로였다. 


생각해 보면 요셉은 화를 내다가도 라몬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인정 넘치는 눈빛으로 고치곤 했다. 너에게 화난 거 아니라고, 겁먹지 말라고 타이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록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일지라도 극명하게 돌변하는 요셉의 눈빛이 라몬은 겁났다.


요셉의 눈빛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이거나 낯선 상대 또는 만만한 상대라도 기분이 나쁠 땐 공포를 일으킬 만큼 사나워졌다는 걸 라몬은 기억했다. 그 사나운 요셉의 눈빛은 바라바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요셉은 예의 그 인정 넘치는 눈빛으로 라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족적이고 거만한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예전의 요셉이 틀림없었다.




먼저 라몬이 친구들에게 자신이 잡혀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동산으로 찾아온 예수를 만난 것에서 그날 밤 로마병사들을 죽이게 된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말하기조차 힘겨웠지만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라몬이 이 방에 짐짝처럼 던져질 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다고 생각했지. 난 여기에 잡혀온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어. 그런데 로마 병사가 던져 놓고 간 짐짝이 라몬이라는 걸 안 순간 깨달았다. 아, 우리는 선택받은 게 아니라 저주를 받았던 거구나. 나서거나 날뛰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아야 했구나 하는 천둥번개 같은 깨달음이 내 영혼을 때렸어. 천사의 음성 따윈 없었어. 그때 우리는 환청을 들었던 거야. 악마의 속삭임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아기가 태어난 해에 온 유대의 아기들이 몰살당했던 거지. 말 구유에서 봤던 아기도 헤롯의 칼에 죽었거나 살았다고 해도 우리처럼 되어 있을 게 분명해.”


저주를 받았다며 자책하던 요셉이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기까지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침내 요셉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래전 그날, 라헬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고민하던 요셉은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주인에게 간다고 해도 이미 많은 돈을 써버린 뒤여서 쫓겨날게 분명했다.


열심히 일해서 그 돈을 갚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 주인의 신임을 얻기 위해 언제까지나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요셉은 예루살렘 성전 이방인의 뜰로 암몬을 찾아갔다.


“뭐라고 암몬! 그 사람이 누군 줄 알고 찾아온 거냐. 이 애송이야. 나귀도 훔쳤군. 환전할 거 아니면 귀찮게 굴지 말고 어서 꺼져.”


뚱뚱하고 냄새나는 환전상이 퉁명스럽게 굴었다.


“장사꾼이겠죠. 고작 시장에서 속옷 두어 벌이나 사는........ 그 사람이 나한테 속옷을 사갔어요.”


요셉은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 사람은 대상이야. 많은 물건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지. 너 같은 애송이한테 속옷 몇 벌 팔고 사는 장사꾼 하고 다르다고. 그러니 나귀 주인한테 잡히기 전에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환전상은 다 안다는 듯 비꼬았다.


“그 속옷은 내가 입으려고 샀네. 잘 지은 옷이었지.”  


요셉이 환전상을 설득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암몬이 다가왔다.


운 좋게도 암몬을 따라가게 된 요셉이었다.

암몬은 요셉에게 장사도 가르쳤지만 도둑질도 가르쳤다.


간혹 인적이 드문 곳에서 암몬 일행은 강도로 변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았다.


암몬 일행은 돈이 궁하고 먹을 게 떨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요셉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이나 동요 없이 맡은 일, 그러니까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포에 질리도록 만드는 일을 누구 보다 잘 해냈다. 


암몬은 처음부터 요셉의 그런 면모를 꿰뚫어 보았다. 상술에 반했다는 건 거짓이었다. 요셉에게서 느껴지는 사나움은 위협적이었고 그것은 암몬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리 중에 가장 젊고 빠른 요셉이었다. 그가 칼을 휘두르며 앞장서서 남의 물건을 빼앗자 도둑질이 한결 수월했다.


재물을 모은 암몬 일행은 몇 년 만에 다시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들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로마군과 반군의 싸움에 휘말렸다.


반군은 아직 조직적으로 힘을 합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끊임없이 국지전을 치르고 있었다.


반군마다 우두머리가 다르고 이념이 조금씩 달랐다. 심한 경우에는 로마 군인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물자가 부족해지면 강도로 돌변하는 반군도 있었다.


또 강도 떼가 마을에 들어와 반군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은 강도와 반군의 구분조차 어려웠다.


로마는 이런 반군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대대적인 군사를 파견하여 정벌에 나섰다.


이스라엘에 산재해 있는 반군은 로마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반군 정벌에 나선 로마 군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다.


로마군들이 반군 세력을 뿌리째 제거하기 위해 포로로 잡힌 반군은 물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이라면 노인, 아이,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죽였다.


때문에 로마이 휩쓸고 간 마을에는 피비린내가 났고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을마다 수십 명의 장정들이 한꺼번에 십자가에 매달린 채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 시체를 거둘 가족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암몬 일행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용케 피해 다녔다. 그러나 결국 암몬 일행도 반군을 쫓고 있던 로마 군인들과 부닥쳤다.


그때 요셉은 아직 스물서너 살의 젊은 나이였다. 요셉의 전대에는 전 주인에게 돌려줄 나귀 값과 주인에게 받아 가지고 나왔던 돈의 열 배가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이제 요셉은 전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고 예루살렘 어디에 떳떳하게 정착하여 장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라헬과 결혼하여 가정도 이루리라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암몬 일행 로마군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암몬은 칼을 빼드는 대신 투항을 선택했다.


젊고 기운이 넘치는 요셉은 달아나고 싶었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암몬이 돈으로 로마군을 매수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병사들은 막무가내로 암몬 일행을 잡혀온 남자들과 함께 가뒀다. 마을의 창고에는 벌써 많은 장정들이 잡혀와 있었다.


낙타와 물건들을 모두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게 되었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경험이 많은 암몬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로마 군인들은 그들을 십자가형에 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십 대의 수레에 싣고 다니던 십자가의 세로대가 갇힌 사람의 수만큼 이미 마을 어귀에 세워졌다는 소문이 창고에까지 들려왔다.


내일 아침이면 창고에 갇힌 사람들 모두 가로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행렬을 이룬 채 마을 어귀의 언덕으로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요셉은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라헬이 보고 싶었다.

라헬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던 밤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라헬과의 하루.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쏟아지던 비.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 비에 젖은 라헬이 두려움으로 떨며 기대 오던 그 순간.

요셉의 가슴은 슬픔으로 무너져 내렸다.


암몬을 따라 숱한 도시를 다니며 술에 취해 여자들을 사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라헬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요셉이 죽기를 결심하고 창고를 지키고 있는 로마 병사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다행히 로마 병사는 요셉에게 관심을 보였다. 요셉은 암몬도 모르게 감추고 있던 보석을 꺼내 로마 병사에 건넸다.


라헬이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는 걸 모르는 요셉은 그 보석을 라헬에게 선물하려 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 기꺼이 내주었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보석이었다.


로마 병사는 요셉이 내민 보석을 받아 챙기고도 놓아주지 않고 다시 그를 마을 창고로 데려가려고 했다.


“만약 저를 다시 집어넣으면 당신은 그 보석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내일 아침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당신 위에 사람에게 당신이 내 보화를 빼앗아서 감추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 그 보화를 팔면 집을 짓고 노예를 사서 일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하긴 전쟁터에서만 있었으니 보화의 가치를 알 리가 없죠.”


요셉은 입술이 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였다.


“이게 그렇게 값이 나가는 거라고.”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실 겁니까. 고향으로 돌아가서 보화를 가지고 부자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저를 다시 창고에 집어넣고 그 보석을 높은 사람에게 상납하겠습니까. 일개 병사가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누가 젊음을 보상해 주겠습니까. 나라에서 주는 몇 푼 안 되는 봉급으로는 결혼도 하기 어려울 겁니다. 고향에 가서 평생을 땀 흘리며 농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부자는 아무나 될 수가 없습니다. 기회를 잡는 자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로마에는 예쁜 아내와 노예를 거느리고 사는 평민들이 넘쳐납니다. 로마에서는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귀족처럼 살 수 있거든요.”


병사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챈 요셉은 거침없이 내뱉었다.


“좋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달아나라. 대신 곧 내가 병사들과 함께 너를 추적할 것이니 잡히지 마라. 만약 잡히면 그 자리서 내가 너를 죽이겠다.”


병사는 보석을 감추고 슬며시 자리를 벗어났다.


요셉은 마을을 떠나는 척하다가 몰래 마을로 되돌아와 몸을 숨겼다. 요셉은 병사가 자신을 놓아주려는 것이 아니라 죽여서 후환을 없애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요셉의 짐작대로 병사는 즉시 요셉의 도주 사실을 알리고 뒤쫓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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