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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Jun 07. 2023

바라바의 혁명

별이 머무는 언덕4

요셉은 당시의 광기가 되살 난 듯 눈을 희번뜩이며 라몬과 바라바를 번갈아 봤다.


라몬은 벽에 기댄 채 가슴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는 차마 요셉을 마주 볼 수 없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요셉의 눈에 들어차 있었다.


그는 통곡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난 그 아기가 환영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동산으로 찾아왔던 예수의 모습이 겹쳤다.


랍비라고도 하고 선지자라고도 하는 예수. 그에 대한 원망과 알 수 없는 희망이 뒤섞여 라몬의 내부에 거센 폭풍우를 일으켰다.


통곡대신 뜨거운 신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바라바는 눈을 감은 채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혁명군 대장이 로마군의 창에 맞아 죽고 위기가 찾아왔었다. 지원금이 끊어진 데다 연일 서열 다툼과 권력투쟁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은 불신과 사기 저하를 가져왔다.


말이 혁명군이지 사실상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오합지졸이었다.


그 시기에 바라바는 새로운 혁명군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되는 권력투쟁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고 모든 분란의 원인인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혁명군은 강도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대상이 로마에 기대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부자와 귀족이긴 했지만 민심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바라바, 오 내 친구.”


강도로 돌변한 혁명군이 행렬을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칼을 빼 든 채 바라바와 요셉은 얼굴이 마주쳤다.


“요셉!”


바라바도 소리쳤다. 놀랍고 반갑고 경이로웠다.


믿을 수 없었지만 엄청난 행렬의 주인은 요셉이었다. 낙타와 말 그리고 수레 가득 실린 물건들. 수행하는 수 십 명의 하인들. 이 모든 것은 부와 권력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요셉은 바라바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해왔다.


부자는 모두 로마의 시녀이거나 유대의 원수라고 생각해 온 바라바였다. 바라바는 자신이 강도가 아니라 혁명군 지도자라는 걸 밝혔다.


뜻밖에도 요셉은 매달 필요한 자금을 보내겠노라고 선뜻 약속을 해왔다. 어쩌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바라바는 생각했다.


기적 같은 일을 함께 겪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어릴 적 친구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 긴 세월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서로 확연히 다른 길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요셉은 매달 그 장소로 많은 돈과 물자를 보내왔다.  요셉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바라바는 요셉의 지원이 우정인지 아니면 유대를 사랑하는 마음인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둘 다 일 것이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유대를 사랑하면서 부자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모순처럼 여겨졌다. 그 누구도 유대인의 고혈을 짜내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요셉을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셉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졌다.


요셉이 없었다면 혁명군은 여전히 봉기를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며 요인 암살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의 적극적인 지원은 게릴라 수준의 혁명군을 대규모 정예군으로 태어나게 만들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조직된 군대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요셉의 지원 덕분에 혁명군은 그전보다 몇 배나 막강해졌다. 기마대를 증강했고 혁명군의 수를 배로 늘렸으며 좋은 칼과 창을 사들였다. 혁명군은 해방에 대한 기대로 들떴고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높았다. 그렇게 봉기를 일으킬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바라바는 막강한 자금과 강해진 군사력으로 로마와 부패한 관리들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반면 백성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 바라바가 머지않아 유대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바라바는 헤롯이 놓은 에 걸려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소문은 곧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졌다.




한 정보원이 도시의 술집에서 우연히 입수한 보를 바라바에게 알려오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라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정보원은 차기 대사제가 될 유력한 후보가 백성들에게 착취한 많은 재물을 싣고 로마로 간다는 첩보를 얻었다고 전해왔다.


로마의 속국이 되기 전 대사제는 종신직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수시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교체하여 정략적으로 이용해 왔다.


그러다 보니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제들은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장사꾼에게 받은 자릿세와 백성들에게 뜯어낸 성전세, 십일조를 비롯해 갖가지 명목으로 거둬들인 세금을 착복해서 총독과 로마 귀족들의 환심을 사는데 썼다.


그러니까 사제들이 백성에게서 짜낸 고혈을 팔아 정복자 로마로부터 권세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첩보를 접한 바라바는 즉시 특별 자객단을 결성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자객단을 진두지휘했다. 바라바는 사악하고 부패한 대사제 후보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를 로마로 보내줄 수 없었다.


게다가 로마로 향하는 사람들의 명단 속에는 혁명군 자금을 대온 친구 요셉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바라바는 로마로 가는 대사제 후보 일행 중에 요셉이 끼어 있다는 걸 알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바라바는 요셉의 지원을 받는 혁명군 대장으로서 그를 보호할 책임을 느꼈다. 요셉이 지원하는 의도가 무엇이든 바라바에게는 봉기를 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요셉이었다.


혁명이든 봉기든 해방된 유대를 이끄는 일이든 돈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바라바는 잘 알았다.


때문에 바라바는 요셉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객단을 이끌고 직접 나섰다. 만약 요셉의 지원이 끊어진다면 혁명군은 봉기도 일으켜보지 못한 채 와해되고 말 것이 뻔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바라바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몇몇 측근만을 제외하고 요셉이 혁명군에게 어마어마한 군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요셉에겐 개에게나 던져주는 먹다 남은 찌꺼기일지 모르지만 혁명군에겐 봉기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자금이었다.


혁명군들 가운데도 로마의 앞잡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바라바는 요셉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숨겨왔다.


덕분에 혁명군들 사이에서 요셉은 무식하고 부도덕하며 쾌락에 빠진 인물로 제거 대상이었다.


괴팍한 요셉이 만찬을 즐기고 술을 좋아하며 예쁜 여자들을 사들여 종으로 삼거나 아내로 맞는다는 소문도 혁명군을 분노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요셉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혁명군 가운데 신흥 부호인 요셉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친구인 바라바조차 요셉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요셉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로마 귀족들과 영향력 있는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었는지, 또 혜성처럼 등장해서 수많은 돈을 뿌리며 유대 관료 사회를 한 손에 쥐고 뒤흔들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 저런 이유로 바라바는 직접 요셉을 보호하고 대사제를 제거하는 자객단을 이끌고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숨어 기다렸다.


무술이 뛰어나고 용기 있는 젊은이로 구성된 자객단이어서 어지간한 정도의 칼잡이들은 간단히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물건을 실은 낙타 행렬이 나타났을 때 바라바는 망설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바라바는 또 다른 숨은 군대가 보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행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일행을 에워쌌다.


행렬을 호위하던 대여섯 명의 무사들이 달아났다. 바라바는 요셉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요셉은 보이지 않았다.


자객단은 로마로 가는 사제 행렬을 덮치다가 그들이 변장한 노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땅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사방에서 다가왔다.


봉기의 조짐을 눈치챈 헤롯과 로마군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젊은 자객단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하나둘씩 차례로 병사들의 말발굽에 짓밟혀 죽었다.


바라바는 필사적으로 로마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날아오는 그물을 피하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바라바는 회한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유월절 안에 이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서 나가게 될 거다."


문득 요셉이 실성한 듯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깟 귀족 몇 명 죽였다고 나를 죽이진 못해. 아니 죽이고 싶어도 내가 가진 것들이 탐이 나서 못 죽이지. 아마 어떤 자가 곧 나를 살려주겠다고 찾아오겠지. 그 대신 내가 가진 것들을 요구할 테고. 내 재물을 그놈에게 넘겨주기에는 아깝지만, 재물이야 또 모으면 되는 거니까 기꺼이 내줄 생각이야. 목숨은 하나뿐인데 어쩌겠어."


요셉은 아직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권력자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 품고 있던 살인에 대한 두려움은 벌써 지워진 듯 보였다. 그도 아니면 뻔뻔해지기로 작정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을 둘씩이나 죽였는데, 그것도 로마 귀족을. 총독이 가만히 있겠어. 로마 원로원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걸. 너를 죽이고 재산을 다 으면 그만이잖아.'


라몬은 겨우 신음을 삼키고 요셉을 바라봤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요셉의 말이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아니 자신의 어리석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양치기에 지나지 않던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라몬이었다.




바라바 역시 그 누구도 요셉을 이 지하 감옥에서 구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허세가 아니라 자기 위안일 테지. 요셉은 언제나 자신감에 넘쳤지만 이번은 아니야. 여기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겠어.'


바라바는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셉이 안타까웠지만 그저 수긍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나를 살릴 자는 빚에 허덕이는 귀족이 될 가능성이 크겠지! 그자는 어떻게든 나를 살리려고 할 거야."


자신을 구해 줄 인물이 구체적으로 떠오른 듯 요셉은 더욱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럴 만한 자를 알고 있거든. 그자는 내가 먹다 남은 찌꺼기들을 던져주면 개처럼 받아먹곤 했었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말이야."


요셉은 재밌다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내가 죽으면 그나마 얻어먹을 게 하나도 없어지는 거 아니겠어. 만약 그 자가 내가 여기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신이 나서 달려오겠지. 내가 어떻게든 요셉을 살려내고 말 거야. 이렇게 다짐하면서 말이야. 내 위기가 그자한테는 기회 거든. 내 기꺼이 그자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어주려고 해. 인생은 참 재밌어."


요셉은 바라바와 라몬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바탕 웃어 젖히기까지 했다.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농산물과 축산물은 물론이고 소금과 포도주와 양털 그리고 부자들의 연료인 숯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싹 쓸어 모아 왔다. 내 창고엔 유대 백성이 먹고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그것을 팔지 않으면 유대 전체가 마비되고 말 걸. 말과 낙타, 고급스런 건축자재 따위..... 건축에 미친 헤롯 안티바스에게도 건축 자재를 공급해 왔으니까. 덕분에 사독에게서 가져온 재물이 수 십배, 수 백배로 늘어났지."


요셉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바라바와 라몬을 번갈아 봤다.  


“내가 너희들, 그 혁명군인가 뭔가 하는 민족주의자들을 위해 쓴 돈은 아깝지 않다. 어차피 그 정도의 돈은 개처럼 구는 그자에게도 던져주었으니까."


그리고 생각난 듯 바라바를 향해 비아냥거리렸다.


"그 사실만 네가 발설하지 않는다면 나는 죽지 않아. 설마 너 살겠다고 그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겠지? 그래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내 안에 숨어 있던 두려움이었군. 네가 나를 폭로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어. 내가 반군의 자금줄이었다고 밝히고 네 그 잘난 목숨을 구걸할까 봐."


요셉은 바라바를 노려보며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요셉!"


바라바가 낮게 외쳤다.


"괜찮아. 바라바, 네가 이 요셉을 팔아서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네가 나를 팔아넘긴다 해도 나는 곧, 어쩌면 내일이라도 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그 달콤하고 어지러운 향기를 맡고 있을 거야. 라몬이 안 됐군. 평생을 양치기로 살다가 자기 아내를 겁탈하려고 달려드는 로마군 몇 놈 때려죽이고 처형되게 생겼으니. 내가 나가면 바라바는 몰라도 라몬은 구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적어도 라몬, 네 아내와 아들만은 내가 돌봐주지. 하긴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겠지만.”


요셉이 꿈꾸듯 중얼거렸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라몬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멀리 달아나서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었다.


뭐라고 대꾸하려던 바라바는 이내 눈을 감고 벽에 등을 기댔다.


요셉이 바라바를 못 믿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아는 바라바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도적에 불과했을 거야. 하지만 교만한 자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데는 나보다 네가 더 크게 성공한 것 같더군. 네가 어쩌다 혁명군 대장까지 되었던 거야. 난 그게 몹시 궁금했어. 양치기 바라바가 어쩌다 혁명군이 되었지, 하고 생각해 보곤 했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더군. 다윗처럼 돌팔매에 능하긴 했지. 어쩌면 왕이 될 운명이었을지 모르겠군."


요셉은 바라바를 비꼬고 원망하다가 분노했다.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은 사나워졌다.   


"나는, 이 요셉은 바라바, 네가, 혁명군 대장인 내 친구가, 이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서 나를 꺼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로 잡혀와. 뻔뻔스럽게.”


이윽고 요셉이 바라바를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요셉, 넌 지금 죽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참다못한 바라바가 낮게 쏘아붙였다.


"내가!"


외친 요셉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바를 노려봤다. 바라바의 말이 맞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목동이었을 때,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서 영접했던 그 아기를 모두 기억할 거야. 나는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뜻을, 나에게 미래의 왕을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기 위해 살았다."


요셉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라바가 입을 열었다.


"혁명군 대장이 된 후에도 베들레헴 구유에서 영접했던 그 아기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 그분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는 그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포기한 적은 없지만 한 가지 깨달았지. 내가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찾을 거라는 걸. 그분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던 거다. 혁명군을 이끌고 봉기를 준비하면서도 그분이 나를 찾아주기를 바랐다. 그분이 혁명의 이유이고 혁명의 완성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바라바의 차분한 음성이 라몬의 가슴에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라몬은 문득 자신은 그분을 찾으려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어쩌면 롯의 칼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랐다.


소년일 때 만났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동산으로 찾아왔지만 그가 정말 자신이 영접한 아기인지 확신은 없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구심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믿음마저도 증발해버리고 만 것 같았다.   


요셉은 바라바의 말에 마음의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애써 비웃는 얼굴을 했다.


요셉도 그 아기의 존재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었다. 천사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별의 인도하심으로 왕이 될 아기를 영접했는데 잊힐 리 없었다.


그도 가끔 아기에 대해 생각했고 선지자나 랍비로 불리는 자들 중에 그 아기가 있을지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좋아 그것만은 인정하지. 우리가 어떻게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있겠어. 나도 가끔은 그 아기를 찾아보려고 했으니까."


요셉은 라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겠지만 언젠가 친하게 지내는 사두개 사람과 함께 예수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다. 혹시 그자가  그 아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요셉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라몬을 바라봤다.


"어느 날 내가 그자에게 물었지. 선하신 선생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영생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질문하고 말았어. 뭐든지 물어봐야 했거든. 어쩌면 그자를 실험해보고 싶었는지 모르지. 왕이 될 자질이 있는지 말아야. "


"그래서......."


라몬은 요셉의 다음 말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자가 그러더군. 어찌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리고.......”


바라바는 자기가 만난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계명을 지키라고 하더군. 난 주저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뻔 한 거짓말을 했다. 다윗도 지키지 못한 계명을 누가 다 지킬 수 있겠어. 물론 그자도 내 말을 믿진 않았겠지.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자기를 따르라고 하더군.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지. 부자일수록 그 말을 따르기가 힘들지. 내가 당혹스러워하니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그자를 믿지 않기로 했지. 그자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나는 하늘에 가기는 틀린 셈이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 그자가 왕이 되려고 했다면 내 돈을 자기에게 가져오라 했을 거라고. 그런데 그자는 내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했거든. 그래서 나도 그자가 왕이 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도 그분을 만나봤다."


바라바가 말했다.


“사실 내 심복이던 가룟 유다가 나에게 예수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망설였다. 예수를 만나는 게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예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는 소문이 부담이 되었던 거지. 너도 알다시피 예수를 죽이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사들은 나의 적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돌아보는 게 지도자의 자존심과 용기라고 생각했지. 무모한 시도로 혁명군을 혼란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목숨을 걸고 예수를 만났다는 거지? 겁쟁이 혁명군 대장 나리께서.......”


요셉이 비아냥댔다.


“네 말대로 난 예수를 찾아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가룟 유다가 예수를 우리의 은거지인 동굴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지.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에 가룟 유다가 정말로 예수를 동굴로 데리고 왔다. 예수는 제자들을 도시에 남겨 둔 채 홀로 왔더군. 먼 길을 마다 않고 와준 예수가 고마웠지. 그전에도 가룟 유다는 틈이 날 때마다 예수에게 왕이 되어 백성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간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처럼 예수와 단 둘이 여행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를 설득하려 애썼다고 하더군. 가룟 유다는 명석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지. 거기다 지도력과 결단력까지 겸비한 사람이다. 예수도 그런 가룟 유다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 만약 예수가 가룟 유다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 먼 길을 동행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솔직히 난 가룟 유다가 예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 자기 입으로 말했듯이 예수는 죽음에 자기 운명을 내던지고 있는데 말이다.”


바라바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첫 대면에서 나는 예수가 가룟 유다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가룟 유다가 그토록 예수를 믿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가룟 유다는 이미 내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사람이었지. 가룟 유다는 예수를 혁명군의 새로운 지도자로 또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로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가룟 유다가 지도자를 잃어버린 혁명군을 설득해서 봉기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들의 우두머리는 내가 아니라 예수가 되는 거지.”


바라바는 쓰게 웃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믿는 건 단지 기적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수는 온화한 듯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었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지.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때와 장소를 미리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나 대신 예수를 새로운 지도자로 모시고 싶어 했고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와 예수와의 만남을 적극 주선했던 것이지. 그때부터 이미 가룟 유다는 나 대신 예수가 우리 혁명군을 이끌어 주길 바랐던 거다.”


"......."


“그분이 귀신을 쫓고 갖은 병을 다 고치며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다 위를 걷고 풍랑을 잔잔케 했다는 것을 가룟 유다를 통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고....... 솔직히 수상한 냄새가 났지만, 가룟 유다가 직접 목격하고 전해준 것이라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룟 유다 역시 그분의 그런 능력과 권위 있는 말씀에 크게 감동받았던 게 틀림없었다.”


"혁명군 대장 자리가 위태로웠나? 심복을 잃게 생겨서 질투가 났었나 보군. 선지자는 선지자의 일을 할 뿐이지. 기도의 능력이 뛰어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자 같은 선지자들은 왕을 세워서 나라를 다스리게 해. 기적만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거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현실이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왕은 이런 현실의 문제를 풀어야 돼. 현실이야 말로 진짜 삶이거든.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자는 왕이 되기보다는 선지자로 남게 내버려 뒀어야 해. 가룟 유다가 그자를 왕으로 모시려 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란 말이다. 가룟 유다가 그자를 설득해서 백성들 앞에서 너에게 기름 붓게 했더라면 지금쯤 세상이 바뀌었을지 모르지. 좋게 말하면 칼로 백성들의 아픈 곳을 긁어준 네가 훨씬 더 왕의 모습을 갖췄지. 기득권을 가진 부자와 권력자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권력을 잡은 후에는 그들에게도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면 될 것이고. 어차피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또 부자는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너는 이제 왕이 되기는 틀린 것 같군. 목숨이나 구걸해야 될 처지가 되었으니.”


요셉이 비꼬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봉기에 마음이 급해져서 예수를 등에 업고라도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 백성들이 따르는 선지자 예수가 적극 지원해 준다면 혁명이 훨씬 순조로워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간청했지. 내 심복이었던 가룟 유다가, 삼 년 전 내 권유로, 예수 공동체의 일원이 된 그가, 완전히 예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동굴로 데리고 온 것은 봉기를 일으키고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을 그에게 다짐받기 위한 것이었지. 가룟 유다는 자기 스승인 예수가 봉기하면 언제라도 혁명군을 동원할 것을 다짐하라고 나에게 종용하기까지 했다. 요셉 니, 말대로 섭섭하긴 했지만 받아들이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자가 거절한 거군.”


요셉이 말했다.


“예수가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종용했는데도 결국 예수는 대답을 피했지.”


바라바가 말했다.


“교묘한 말장난이나 늘어놓았겠지. 그자의 재능이니까


요셉이 말했다.


“유다야, 어린애처럼 성급하게 보채는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것이 없다. 다만 너의 뜻을 버리고 내 뜻과 가르침을 따르던지 네 친구를 따르던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를 한참 바라보더군. 마치 오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나는 오래전 영접했던 아기의 눈에서 보았던 평안을 느끼고 무릎을 꿇을 뻔했지.”


바라바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진정이 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예수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동요가 일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이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고 그분의 손을 잡고 싶은 뜨거운 마음도 생겼지."


"......"


“그때 예수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하더군. 칼과 군대를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그러면 머지않아 죽음을 이기고 오는 참된 왕을 보게 될 거라 했지. 나는 혼란스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분이 일어서서 돌아가려고 할 때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습니까,라고. 그분이 돌아서서 그러더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운 나라라야 영원하다. 칼로 세운 나라는 칼로 허물어진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예루살렘엔 로마의 시녀들이 득실거리고 대사제들도 타락했습니다. 예배드릴 백성이 있고 성전을 지을 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 외에 또 어디에다 성전을 짓겠습니까. 나는 좀 실망스러워서 투덜거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분은 흔들림 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군. 네 앞에 있는 이가 살아 있는 성전이다,라고.”


바라바가 말했다.


“결국 너에게 기름 부어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군.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했어야지. 너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었던 거야.”


요셉이 또다시 비아냥댔다.


“.........”


바라바가 말없이 요셉을 바라봤다.


“그자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자에겐 평범한 말도 진리로 바꾸어 놓는 능력의 혀가 있지. 그러니 그자가 무능한 너쯤이야 가지고 놀았겠지.”


“그 후로도 가룟 유다는 예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줄 것을 귀찮을 정도로 간청했던 걸로 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며 가룟 유다를 실망시켰다. 부활을 믿지 않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의 부활 선포는 공허했던 거지. 그러나 가룟 유다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룟 유다야 말로 유대의 최고 랍비지.”   


바라바는 요셉의 비아냥에도 아량곳 하지 않았다.



그때 철창 밖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브런치 작가님들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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