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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Jun 12. 2023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폼은 납니다.

녹음실 대표님에게 사용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네요. 엠알 볼륨 조절 등에 대해

사진이라도 남기자 싶어서......


가 만든 노래(감히 작사 작곡이란 말은 못 합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기타 조금 치는 것과 글 좀 끄적대는 것이 어떻게 하다 보니 합쳐져서 노래가 되었을 뿐입니다.)인데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음악 선생님에게 온라인으로 석 달 정도 개인지도를 받아왔지만 여전히 박자, 음정 등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둔한 줄 정말이지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녹음까지의 일정은 이미 잡혀있었습니다.

 

저는 음악선생님에게 대면 수업을 받기 위해 녹음 십여 일 남짓 앞두고 부산으로 내려습니다. 부산 사는 딸이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했지만 저는 기어코 음악실 기까이 있는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아빠, 그러시면 자식 마음이 편하겠어요. 사위가 불편해요?"  

딸이 짐짓 화를 내며 취소하고 집으로 오라 종용했습니다.  


"불편하지 않지만 불편하지. 그냥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러 가는 거잖아."

하지만 저는 음악실 가까운 곳에 머물며 온전히 연습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설득했고 딸은 제 말에 조금은 수긍하고 누그러졌습니다.



숙소에 머물며 매일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고 음악실에서 연습을 하며 자신감을 키워갔습니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미친 거 아냐? 노래도 못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겠는 걸.'  

사실은 희망보다는 절망이 컸고 매일매일 좌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결전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오전 수업을 끝내고 녹음실이 있는 진주로 향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도 있었고 며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변화도 진척도 없었기에 마음은 무거웠고 우울했고 답답했습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가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녹음실 근처 모텔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담배냄새인지 뭔지 모를 냄새가 배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마침 화장대에 싸구려 방향제가 놓여 있어서 사방에 뿌려놓고 요기라도 해야겠어서 모텔을 나왔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요.


하긴 제 일상이긴 합니다. 저는 배고픔을 즐기는 편이라 항상 오후 늦게 첫 식사를 합니다. 그도 아니면 아예 하루종일 쫄쫄 굶다가 밤에서야 만찬을 즐기든지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포만감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먹는 걸 즐기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굶다가 먹으면 모든 게 다 맛있거든요.


부산에 도착한 첫날에도 한 움큼 정도 되는 비빔밥을 오후 늦게 그러니까 7시쯤 첫끼로 사 먹고 뭔가 더 먹기도 애매해서 그냥 잤습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에 깨서 비스킷(숙소에서 제공하는) 두 개와 물 두 병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지만 더 이상 잠을 못 이루고 밤을 꼬박 새웠다는..... 그럴 때 저는 주로 브런치를 돌아다니며 글을 읽습니다. 브런치가 저의 새로운 취미생활이 되었죠.


아무튼 그런 저런 어리석음이 떠올라 제대로 식사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식당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제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문 연 식당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대부분 폐업했거나 휴일이었습니다


길 건너 진주 방송국 근처에 삼계탕집이 하나 있어서 가보니 폐업, 갈치정식집은 휴일, 그 옆집 감자탕집은 폐업,  뭐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딱 한 곳 간판불이 켜진 곳이 있었는데 '방송국 옆 酒'이었습니다.


나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 바깥은 환했는데 간판불도 켜져 있었고 실내 조명등도 켜져 있어 무작정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두부김치 같은 안주라도 사 먹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술 마실 욕심이 앞섰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음 날 녹음이라 술보다는 마음 조절에 신경이 쓰였거든요.

 



안에는 손님이 제법 있었는데 활기가 넘쳤습니다. 쓸쓸하던 거리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라서 눈치가 보였던 탓에 가장 비좁고 후미진 곳에 앉아 있다가 알바학생이 가져다주는 메뉴판을 펼쳤습니다. 두부김치는 없었지만 다행히 제가 요 며칠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스파게티가 떡하니 메뉴 끝에 있는 겁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그걸 주문했습니다.

 

맥주 한 병 하고요.


사실 부산 숙소에서 스파게티 먹겠다고 맛집 검색해서 부산여대까지 걸어갔었는데 문을 닫아서 못 사 먹었거든요. 그래서 그날은 숙소 옆 술집에서 두부김치로 식사를 대신했었습니다. 그날도 맥주 한병하고요.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나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맥주를 곁들였더니 배가 불러서 많이 남기긴 했지만 사실은 모처럼 맛있는 식사를 했던 셈입니다.


부산에 도착한 이튿날 딸과 사위가 와서 자연산 회와 생맥주를 사주고 간 것 말고는 집 떠나 가장 잘 먹은 날이었습니다.

 

갈 데도 없고 해서 그냥 모텔로 돌아왔는데 뿌려둔 방향제 덕분에서 냄새도 조금 덜 하고 해서 그 기분 그대로 브런치를 다니며 글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밤이길 바랐습니다. 만약 녹음이 성공하지 못하면 하루 더 묵을 수도 있으니까요.


몇 번을 자다 깨다 아침을 맞았습니다. 저는 오늘만큼은 일찌감치 뭔가를 먹어야겠다 마음먹고 짐을 챙겨 모텔을 나왔습니다.


12시까지 방을 비워줘야 한다 해서 11시쯤 나왔지만 녹음이 오후 4시라 막막하긴 했습니다.


녹음실 앞에 차를 세워놓으며 보니까 바로 앞 순두부집이 문을 열었더라고요. 어제는 닫혀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차 안에서 엠알을 들으며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식당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배는 안 고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녹음하다 지치면 안 되니까요.


식당에서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도 차마 돌아 나오지 못했습니다. 쥐똥냄새와 찌든 돼지기름냄새 따위에 비위가 상했는데도 말입니다.


식당 바닥은 얼마나 안 닦았는지 기름때로 새까맣게 뒤덮여 었습니다. 테이블 아래만 겨우 본래의 바닥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테이블은 끈적거려서 그야말로 손을 댈 수가 없었고요.


식당 안에는 나 외에 손님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배달은 몇 개 있는 듯했고요.


삼십 대 중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의 고달픈 삶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부부가 투잡을 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을 거라고 짐작되었습니다. 버텨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리라.  


그래서 차마 나올 수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거사를 앞두고 남의 마음도 내 마음도 그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순두부찌개는 맛있었습니다. 제가 그 시간에 무얼 먹는다는 건 이례적인데도 맛있게 먹은 걸 보면 정말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건더기만 건져서 밥통 냄새가 밴 밥을 비벼 반 정도 먹었습니다. 맛이 없어서 남긴 게 아니라 평소에도 가능한 좀 덜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애써 참고 남겼습니다.  




세 시가 되니까 음악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긴장을 하셨는지 화장실을 서너 번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딸과 사위가 김밥을 잔뜩 가지고 등장해서 녹음실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이 녹음실에서 녹음했던 딸



녹음실 대표께서 장비 점검을 마치고 나서 저는 녹음실로 들어갔습니다. 두 개의 문이 닫히고 저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편안하게 그냥 부르세요.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엠알이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긴장한 탓에 첫 음을 놓쳤습니다. 음정은 불안했고 제 몸은 떨려왔습니다.


 실수는 반복 됐습니다. 어쩌면 녹음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익숙해질 때까지 그냥 혼자서 노래를 부를 테니 녹음하지 마세요. 연습할 때처럼 그냥 저 혼자 몇 번이고 불러보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녹음실로 들어가면서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습니다.


녹음실 대표님이 엠알을 계속 올려주었고, 저는 반복해서 수십 번 정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좀 진정이 되기 시작했고 감정까지 실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떨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놓치는 부분, 틀린 부분이 많았던 가 봅니다. 선생님의 지적이 있을 때마다 수 십 번씩 반복해서 녹음하다 보니 지쳐갔고 결국 감정은 제대로 싣지도 못하고 녹음을 마쳤습니다. 6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결과물은 처참했습니다. 사실 저는 음반을 내지 않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봤지만 다시 해봐야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이건 생으로 듣는 목소리니까, 나중에 조율이 끝나고 나서 다시 들어보고 결정하시죠. 엠알 깔리면 괜찮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녹음실 대표님과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깜깜한 밤중이었습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음성지원 단추를 눌렀습니다.


우리 집, 이라고 말하는데 어찌나 코끝이 찡하고 맵던지요. 눈물이 핑돌더라고요.


내비게이션에 우리 집 가는 길 204킬로미터가 펼쳐지고 도착 시간까지 알려줍니다. 곧이어 지도가 클로즈업되면서 제가 지금 당장 가야 할 길이 나타나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우회전하세요,라고 알려줍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면서 속도를 140km로 맞추고 등을 기대앉습니다. 평상시 설정 속도에 비해 무려 30km나 높습니다. 제 아내가 답답해해도 고속도로에서 저의 설정 속도는 언제나 110km였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단속구간이 연이어져서 실제 주행 속도는 대부분 100km를 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어둡거나 커브가 심하면 상향등을 켜고 끈다거나, 옆차가 끼어들면 속도를 줄이고, 차간 거리가 좁아져도, 또 이동식 단속구간이 나타나도 알아서 운행해 주는 자율 덕에 저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젠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 본다고 해도 이놈만큼은 잘 보지 못할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인 일이었던가! 싶으면서도...... 저는 다시 눈시울이 젖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집이 뭐지! 이렇게 호기를 부리는데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습니다.


집이 뭐죠?




어제 집에 돌아와 편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집이 왜 나를 그토록 감동하게 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


집을 떠나 있는 며칠 동안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글 한자도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읽고 또 읽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글들이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시간을 버티는 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님들 언제나 건강조심하시고요.

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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