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의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바라바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침울하고 무거웠다.
그는 바라바 가족들에게 겨우 눈인사를 건네며 눈치를 살폈다. 바라바의 가족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의 시선이 일순간 라몬에게로 향했다. 바라바는 등을 보인 채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께서 아무리 말리셔도. 제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전 식사가 끝나면 바로 이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가족들의 시선은 다시 바라바에게로 돌아갔다.
“라몬도 함께 가는 거냐!”
바라바의 아버지가 라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몬은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동생들을 바라봤다.
“이건 저만의 계획입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죠.”
바라바가 라몬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말했다.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바라바는 무엇보다도 어린 동생들에게 미안했다. 이제 막 철이 들어 적지만 얼마간의 품삯을 받아오기 시작한 동생 요압과 우리아 그리고 처녀티가 나기 시작한 여동생 라헬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바라바를 바라보는 그들은 제발이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먹고살만해졌는데, 우리 집안에서 제대로 된 품삯을 받아오는 사람은 너뿐인데.’
동생들의 시선을 피하고 나자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바라바는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라몬 역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바라바가 뜯다 만 빵조각을 내려다봤다.
바라바의 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두 다리를 원망하고 있을지 몰랐다.
바라바의 아버지 사울은 가뭄으로 인해 농사가 어려워지자 일꾼들을 모아서 예루살렘 성전 토목공사에 참여했다.
덕택에 가뭄 가운데서도 몇 년 동안은 살림이 피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어느 날 쌓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면서 돌무더기가 아버지 사울을 덮쳤다.
엄청나게 큰 돌에 깔려 그 자리서 즉사한 사람도 있었으나 사울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사울의 두 다리는 박살이 났다.
사울은 죽지 않고 회복되었지만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아들 바라바는 어린 나이부터 가족들의 빵을 해결하기 위해 양치기로 나섰다.
가족들의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의 삯을 받는 양치기였다.
“곧 돌아올게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머니.”
바라바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니? 양치기는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우리와 좀 더 있어 주면 안 되겠니. 넌 아직 혼자 어딘가로 떠나기에는 어려.”
어머니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할 일을 찾기에는 그다지 이른 것도 아닙니다. 이 골짜기 마을에서 평생을 보낼 순 없어요.”
바라바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족들은 이제 바라바를 붙잡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라몬도 바라바가 얼마나 굳게 마음먹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어머니가 탄식처럼 내뱉었다.
“오빠, 아기를 찾아가는 거지! 하지만 오빠는 아기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쩔 셈이지?”
라헬이 슬픈 얼굴로 물었다.
“어쩌면 내가 찾아 나서기만 한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 아기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바라바가 말했다.
“아기를 어떻게 찾아, 아니 어떻게 알아봐. 이제 겨우 예닐곱 살쯤 되었을 텐데. 아기 때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그리고 그때 헤롯의 칼에 죽었으면 어떡해. 우리를 배고프게 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거잖아. 오빠.”
라헬이 말했다. 여전히 슬픈 얼굴이었다.
“아기는 어딘가에서 잘 자라고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왔어. 그리고 만약 만나기만 한다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 아기는 뭔가 달랐어. 아주 깊고 아득한 눈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 좋아. 아기를 만난다고 해. 하지만 아직 예닐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애가 뭘 어쩌겠어. 오빠가 뭘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해!”
“나이가 어리지만 우리의 왕이 되실 분이야.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날 필요로 할지 몰라. 오빠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생각이라면 진즉에 떠나지 그랬어. 왜 이제 와서.......”
“이제야, 준비되었을 뿐이야. 내가 이만큼 강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야.”
“우리도 강한 오빠가 필요해.”
“라헬, 그분이 우리 모두를 구해낼 거야. 난 그분을 도와야 해. 어쩌면 지켜드려야 할지도 모르지. 지금은 말이야.”
바라바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거야. 내 말은 하나님께서 도우실 거라고.”
“맞아.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나에게 그 일을 맡기시려고 천사를 보내셨던 거야.”
“거짓말이야. 오빠는 우리를 버리려고 하는 것뿐이야. 이제 우리 가족이 지겨워진 거라고 왜 솔직히 말하지 않아.”
라헬이 울음을 터트렸다.
“라헬,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동생들과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도. 그러니 오빠를 너무 마음 아프게 하지 마.”
바라바가 말했다.
“얘야, 하나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분의 뜻에 합당한 것이란다. 그리고 엄마 생각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엔 아직 넌 어린것 같구나.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잖니.”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아들은 이제 남자예요.”
바라바가 말했다.
“우리는 너에게 양을 사주려고 네가 벌어온 돈을 조금씩 모아 왔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되는데........ 너는 이제 양치기로서 인정을 받고 있잖아. 사람들은 네게 맡긴 양들이 살찌고 젖이 풍부하며 털이 잘 자란다고 하더구나. 이제부터는 어디에 가든지 제대로 된 삯을 받을 수 있어서 곧 양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구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네 동생들이 품삯을 받아오기 시작했으니 우리 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거든 언제든지 돌아오너라.”
아버지가 말했다.
“모아 놓은 돈은 가족들을 위해 쓰세요. 만약 돌아와서 다시 양치기가 되고 싶다면 제 양은 제가 사겠어요. 이제 저도 어른이니까요.”
바라바가 웃음 띤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니다. 돈은 네가 가져가거라. 가족과 고향을 떠나면 너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돈뿐이다. 작은 돈이지만 필요할 거다. 어차피 너를 위해 아껴둔 것이잖니.”
아버지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저는 어디에 가서든지 품삯을 후히 받을 거예요. 제 넓은 어깨와 튼튼한 다리를 보세요. 무슨 일이든 못하겠어요. 바다 근처에 가면 배를 타보고 싶어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벌 수 있어요.”
바라바가 말했다.
“아들아, 아버지가 주는 돈을 꼭 가져가라.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네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거다. 그리고 내가 아끼던 배낭과 샌들도 가져가거라. 네가 스무 살이 되면 주려고 했는데......”
“아버지, 고맙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바라바는 아버지의 배낭에 빵과 샌들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맨 먼저 아버지를 껴안고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너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지만, 전쟁의 소문이 있는 곳은 피해 다니거라. 그리고 행여 유대 혁명군에 가담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바라바의 등을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유대 아들 중 누군가는 혁명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혁명군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대 혁명군이 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광야 깊은 곳에서 훈련을 받고 게릴라식 전투로 로마 수비대를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로마의 시녀가 된 요인들을 살해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 중 하나였다. 죽지 않고 살아 있더라도 로마 수비대의 추격을 피해 광야에서 숨어 지내야 했고 언제 어느 때 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목숨을 내놓고 임무를 수행해도 팍팍하고 고단한 유대 백성의 삶은 변함이 없었다.
유대 해방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로마의 착취와 횡포가 날로 심해질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제 운명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당시 바라바는 자기가 머지않아 유대 혁명군이 될 줄은 모르고 있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꼭 가야겠니!”
곁에 있던 어머니가 괴로운 얼굴로 바라바를 껴안았다.
“죄송해요. 어머니. 단 한 번만이라도 저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만약 제 길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돌아올게요.”
바라바가 말했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마.”
어머니가 눈물을 보였다.
“너희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바라바가 문 앞에 서 있는 동생 요압과 우리아와 포옹했다.
“형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요압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길.”
우리아가 말했다.
“아버지를 잘 부탁할게.”
바라바가 말했다.
“오빠, 가지 마.”
바라바의 품에 안긴 라헬이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하구나.”
바라바는 라헬의 등을 몇 차례 쓰다듬다가 돌아섰다.
바라바 자신조차도 그 길이 가족과의 마지막 작별이라는 것을 몰랐다. 돌아올 수 없는 길, 돌아와서는 안 되는 길을 떠난다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바라바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라바의 등을 바라보고 있던 라헬이 가끔 소리 내어 훌쩍였다.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가장 슬퍼하는 것이었다. 바라바가 얼마나 끔찍이 아끼던 여동생이었던가.
라몬은 바라바가 마을을 떠난 뒤에도 양유와 빵을 들고 바라바의 집에 들르곤 했다.
라몬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빠의 등을 바라보던 라헬의 슬픈 눈빛이 라몬의 가슴에 사랑의 우물을 깊이 팠다.
친구 바라바가 아니라 여동생 라헬이 그리운 사람이 될 줄은 라몬도 몰랐다.
그리움은 날마다 짙어만 갔다. 저녁 무렵 마을을 내려다보면 라헬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풀피리를 불면 라헬이 별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뜻밖에도 라헬이 라몬을 찾아 산으로 올라왔다. 라몬은 신열에 들떠 라헬에게 포도떡을 먹이고 신선한 양유를 마시게 했다.
명랑한 척 지껄이던 라헬이 라몬의 어깨에 기대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라몬은 영문도 모른 채 찢어질 듯 가슴이 아팠다.
'바라바는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라몬은 라헬이 바라바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짐작했다.
'라몬 오빠, 나 임신했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라헬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 라헬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 라몬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꿈속에서 들었던 라헬의 절망적인 울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달콤하고 평화로운 꿈의 기운이 스러져가고 대신 살이 찢어진 고통이 밀려들었다.
“라몬, 우리를 알아보겠어!”
바라바의 목소리가 꿈과 현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비로소 라몬은 자신이 안토니오 요새의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의식은 명료했다.
로마 병사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몸뚱어리가 갈기갈기 찢기던 그 고통의 시간이 떠올랐으나 이상한 안도감이 마음을 감싸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