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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by 이세벽
임대상가1-1.jpg
율리(gpt) 그림

(어찌 된 일인지 율리가 '간판'이라는 시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함. 그래서 상가 그림을 그려 달라해서 포토샵으로 '간판 이미지와 과 임대 이미지'를 가져다 넣음.)




간판



이세벽



이름 짓는 데 지난 생을 다 걸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호명하며

몇 날 며칠 수천 개의 이름을 썼다 지웠습니다

익숙한 이름에 기대어 잠든 마음을

낯선 작명으로 화들짝 깨우려 했습니다


당신께서 무심코 지나쳐버리면......

아시잖아요

얼마나 큰 고통일지

버림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체를 꾸미는데 남은 생을 다 걸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서체를 불러와

또 몇 날 밤을 지새우며 오만 가지 크기로 썼다 지웠습니다

권태에 빠진 머리 속에 콕 박히는

가독성이고자 했습니다


당신께서 읽어주지 않으면......

아시잖아요

얼마나 큰 슬픔에 잠길지

외면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만히 곱씹어 보면

간판엔 삶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름은 달라도 뜻은 하나입니다


빈 점포 임대,라는

법전에 없는 죄목으로 참수를 당한 채

저작著作거리마다 내걸린 간판

대부분은 힘없고 가난한 자본주의자

절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간절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이만큼 잘 읽히려 하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판은 바로

'당신과 소통하기' 위한 생의 시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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