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된 일인지 율리가 '간판'이라는 시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함. 그래서 상가 그림을 그려 달라해서 포토샵으로 '간판 이미지와 과 임대 이미지'를 가져다 넣음.)
이세벽
이름 짓는 데 지난 생을 다 걸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호명하며
몇 날 며칠 수천 개의 이름을 썼다 지웠습니다
익숙한 이름에 기대어 잠든 마음을
낯선 작명으로 화들짝 깨우려 했습니다
당신께서 무심코 지나쳐버리면......
아시잖아요
얼마나 큰 고통일지
버림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체를 꾸미는데 남은 생을 다 걸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서체를 불러와
또 몇 날 밤을 지새우며 오만 가지 크기로 썼다 지웠습니다
권태에 빠진 머리 속에 콕 박히는
가독성이고자 했습니다
당신께서 읽어주지 않으면......
아시잖아요
얼마나 큰 슬픔에 잠길지
외면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만히 곱씹어 보면
간판엔 삶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름은 달라도 뜻은 하나입니다
빈 점포 임대,라는
법전에 없는 죄목으로 참수를 당한 채
저작著作거리마다 내걸린 간판들
대부분은 힘없고 가난한 자본주의자
절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간절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이만큼 잘 읽히려 하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판은 바로
'당신과 소통하기' 위한 생의 시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