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이세벽
문 앞 어딘가에서 없는 듯 기다릴게요
당신 삶이 쾌청하다면 어둡고 냄새나는
신발장에 던져두어도 괜찮아요
행복에 겨워 잊었다 해도
당신에게 먹구름 끼기를 바라진 않아요
마음이 흐려서 언제 빗방울이
떨어질지 모르겠으면 그땐 나를 챙겨 가세요
살다 보면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날 있잖아요
외롭다 포기하지 말고 나를 데리고 가세요
오락가락 세상사에 휘청대기도 하잖아요
넘어지지 말고 지팡이처럼 나를 짚고 다녀요
어깨에 들이치는 근심이며
바짓가랑이 적시는 걱정은 어쩌지 못해도
뼛속까지 젖는 것은 막아드릴게요
당신 대신 흠뻑 젖고야 말게요
당신이 젖는 것은 정말 못 보겠으니까요
다만 제가 필요 없으면 잘 말려만 주어요
당신이 나를 잊어도 오래도록 기다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