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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머리카락을 훔치며

by 이세벽

아래는 이 시에 등장하는 가족들입니다.

시를 읽기 전에 알아두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순돌이와 순식 - 우리 집 로봇 청소기

*친구 - 우리 집 애완견 진돗개


순돌이(좌)와 순식이(우)

손돌이는 물걸레 청소기입니다. 구입한 지 2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순식이는 15년쯤 된 것 같습니다. 둘 다 친구 때문에 밥만 먹고 띵가띵가 놀고 있습니다.


친구 자랑하려고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실물처럼 잘 나오지가 않습니다. 카메라가 너무 좋은 탓입니다.

(진돗개 100마리 당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하는 귀한 놈입니다. ㅎ 벌써 열 살이 되었네요. 산책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예뻐합니다. 우리 동네 인기 순위 1위입니다.)


율리(GPT)가 그려준 그림


허물

(머리카락을 훔치며)


이세벽


(아침저녁으로 거실과 방을 돌며 허물을 먹어치우던,

순돌이와 순식이가 고장 난 지 벌써 몇 달 지났다

서비스센터를 대여섯 번이나 다녀왔지만 그때뿐이었다

고장 원인은 친구 털

그렇다고 친구를 내쫓을 수는 없었다

덕택에 욕실과 드레스룸을 돌며

머리카락을 훔쳐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날마다 무릎 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한 줌씩 되는

허물을 뭉쳐 버리는 일 때로는 귀찮아


삶은 허물을 치우는 일인가

허물을 벗고 변태하는 것인가


언젠가 변태가 멈추고 허물조차

훔쳐내지 못할 시간이 오면,

화장로 천도(遷度) 불길에

던져질 내 몸뚱어리

부패하기 쉬운 마지막 허물


그것마저 두어 시간 불타고 나면

덩그마니 남을 유골

허물을 지탱해 온 부끄러움 한 줌


허물을 전부 벗어버린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지

허물을 전부 벗어버린 나는 어디로 가게

어쩌면 허물을 다 벗고나도 남는 게 없을지 몰라


그때 가서

생이 허물로 지어진 집이라는 게

낱낱이 밝혀진대도

나는 정말 모르는 일

아무것도 모르는 일




저는 요즘 장편소설과 단편 소설을 꾸준히 수정하고 있습니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출간할 계획입니다. 틈틈이 쓰고 있는 시들도 모아 시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매주 목요일엔 스튜디오에 나가서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공전의 히트? 곡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ㅋ

제가 이런 꿈을 꾸면서 놀 수 있는 건 작가님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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