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 올리브 제로, 여기 올리브 11.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나흘째 교신이 없던 올리브 11에게 무전이 들어왔다.
- 여기 올리브 제로. 말씀하세요.
소파에 기대어 있던 수연이 벌떡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송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야 송화기 버튼을 눌렀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가라앉혔지만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 올리브 11, 남이분기점에서 대기 중입니다.
올리브 11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태연했다.
- ......
수연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허공을 향해 헛웃음을 서너 번 연달아 쏘아 올렸다.
한 경장이 떴다방 김 사장의 신상정보를 캐묻고 돌아간 뒤에도 술자리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떴다방 김 사장은 자신이 해온 불법 정비로 인해 처벌을 받을까 봐 호들갑을 떨면서도 눈치 없이 떠벌인 돈 가방에 대해서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김진규가 동생, 어찌 된 일이야! 라고 진지하게 묻는데도 떴다방 김 사장은 오직 자기 걱정밖에 없었다.
올리브 07은 한 경장에게 마지막까지 주장했던 것처럼 돈 가방을 포텐샤 트렁크에 원래대로 넣어놓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무실이나 레커차에 보관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그 돈 때문에 수연이가 불안에 떨며 잠을 못 이룰까 봐 걱정됐고, 나도 역시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한 경장이나 경찰을 믿을 수도 없었다. 내가 만나본 경찰은 하나같이 돈독 오른 잡범들이었다. 고속도로순찰대는 과속을 핑계로 차량을 세우고, 단속에 걸리면 면허증 아래에 현금을 접어서 건네는 게 관행처럼 굳어버렸다. 그렇게 뜯어낸 돈으로 일 년에 집 한 채씩 산다는 소문이 과장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만난 일선 경찰도 다르지 않다. 나한테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어떻게 믿겠냐. 만약 내가 한 경장에게 알렸다면, 그 돈을 가로채고 나한테 누명을 씌웠을 게 분명하다.'는 게 올리브 07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괜히 내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제자리에 넣어놓은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보관해 두었다가 차주에게 직접 건네줄 것을 그랬다며 후회의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 돈, 황 사장이 감찼다카믄 절대 돌리주지 마라. 돈 잃고 깜빵 간다. 그거는 인자 황 사장끼다.' 술에 취한 떴다방 김 사장이 식당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또다시 올리브 07의 속을 뒤집었다. 하지만 올리브 07은 그저 웃어넘겼다.
' K공업사 차는 내일 가져다줄게 .'다만 생각난 듯 그의 뒤에 대고 소리친 게 전부였다.
'이제 그만 마시고 눈 좀 붙여.' 수연은 떴다방 김 사장이 판금 자국과 퍼티로 얼룩진 세피아를 타고 차고지를 빠져나가는 걸 보고서야 식당으로 갔다.
그제야 김진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 나 먼저 갈게. 힘내.' 김진규는 술기운에도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웃음 속에는 올리브 07에 대한 의구심이 묻어났다. 올리브 07은 그것을 느꼈지만 모른 체 넘겼다.
'그 돈은 나한테 없다. 주인한테 안 간 거 보면 중간에서 누가 가로챈 게 분명하다. 그 부분은 내가 결백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 경장이 가져간 도청기다. 경우에 따라서 91K 사고도 내 발목을 잡을 수 있겠지. 만약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러니까 한 경장이 나를 엮으면 공다섯..... 현철이 네가 수연이 도와서 올리브 레커 잘 이끌어라. 대출 상환만 하면, 이 회사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올리브 07은 각오한 듯 올리브 05와 수연에게 당부했다.
'무슨 말이야.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자기가 돈 가방을 감춘 줄 알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제 안심이 돼.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갈 거야. 돈 가방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한 경장인들 어떡하겠어. 만약 무슨 일 생기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
올리브 07을 의심하고 있던 수연은 눈물까지 보였다.
'사장님, 그거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만약 그런 일 생기면 제가 사모님 도와서 이 회사 지켜내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올리브 05는 처음부터 올리브 07을 의심하지 않았던 듯 담담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 알았다고 해. 내가 지금 올라가 볼게.
올리브 07이 방에서 나오면서 베개에 짓눌린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쓸어올렸다.
- 여기 올리브 제로. 알았습니다.
수연은 입을 삐죽이며 송화기를 업무일지 위에 던져두었다.
- 이 새끼가 어딜 다니는 거야. 여수 간다더니 사흘 만에 나타나서는…….
올리브 07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걔한테 차 키 빼앗아야 하는 거 아냐!
수연은 점퍼를 걸쳐 입는 올리브 07에게 소리쳤다.
- 만나 보고…….
올리브 07은 사무실을 나서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머니를 만져보다가 그냥 돌아섰다.
- 뭐 찾아? 담배! 끊었잖아.
- 아, 그렇지.
- 들어올 거야?
- 봐서.
- 운전 조심해.
수연의 말이 끝났을 땐 이미 출입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닫힌 뒤였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팔짱을 꼈다.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적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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