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1번 2악장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우리 가족 네 명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의 일이다. 아빠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로 들뜬 나와 언니는 마냥 해맑았다. 호텔 안에서 매점을 운영하셨던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멀리서 할아버지 실루엣이 보였고 “할아버지 저기 계시네. 얼른 뛰어가!”라는 엄마의 말에 언니와 나는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할아버지는 뛰어오던 언니를 번쩍 안아 하늘 구경 한 번 시켜주고는 품에 꼭 안아 매점으로 들어가셨다. 같이 달려갔던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천천히 걸어오시던 엄마, 아빠와 함께 언니가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간 그 길을 따라갔다.
적당히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식당에 갔다. 메뉴는 조개구이. 당연히 할아버지 옆은 언니 자리였으며, 언니는 조개에 손을 대지 않고 할아버지가 까주는 따끈한 조갯살을 입에 넣었다. 나는 내 손만 한 조개와 씨름하며 겨우 하나를 까고 있을 때 내 옆에 서너 개씩 쌓이는 조개껍데기를, 아니 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보았다. 지금보다도 더 말수가 없던, 감정을 통 드러내지 않았던 내가 “언니는 좋겠다. 할아버지가 까주는 거 편히 먹어서.”라고 했단다. 난 기억나지 않는, 아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때의 내가 참 불쌍했다.
이런 할아버지에게 내 이름은 ‘둘째’였다. 언니의 이름은 당연히 ‘OO’.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언니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던 할아버지는 날 ‘둘째’라 부르셨고 가끔 이름을 부르실 땐 다른 손주의 이름을 부르시곤 했다. 티는 안 냈지만 20년 넘은 지금까지도 이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꽤 상처받았었나. 그땐 이유를 몰랐지만 좀 자란 뒤 부모님께 할아버지 마음을 전해 들으니 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리 컸던 이유 중 하나는 언니가 ‘할아버지의 첫 손주’였기 때문이다. 처음 손주를 봤을 때의 신기함, 설렘, 벅참을 내가 감히 상상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다.
그래도 이런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부모님께서 더 잘 챙겨주셨다. 할아버지 대신 아빠가 조개껍데기를 까주셨고 할아버지 대신 엄마가 내 이름을 언제나 상냥히 불러주셨다. 그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부럽지 않았고 언니를 질투하지도 않았다. 진심이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 곡 하나를 들려주고 싶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1번 2악장. 이 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삽입되어 더욱 유명한데, 모차르트가 죽기 2개월 전 본인의 죽음을 직감한 상태로 쓴 곡이다. 모차르트가 남긴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며 ‘천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작품에서 클라리넷을 향한 모차르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 음역이 가장 넓은 악기다. 저음과 고음의 음색이 다름을 생각해본다면 음역이 넓은 클라리넷은 하나의 악기로 다양한 색채를,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이 클라리넷 선율을, 조개껍데기를 힘겹게 까던 그 둘째 아이에게 들려주어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