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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e a dan Dec 06. 2022

네가 떠난 지 82일이 지났다.
그런데 난

짐발리스트 조가비(sea-shell)

새벽 1시. 고요한 적막, 어둠 속으로 옅게 들어오는 오묘한 빛에 내 감정을 단단히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에 펜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새벽에 쓴 글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하지만 차갑고 어두컴컴한 이 시간에 찾아온 이 감정도 소중한 나의 일부일 테니 놓치고 싶지 않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네가 떠난 지 곧 있으면 세 달이 된다. 나의 행복한 시절에 네가 있었던 걸까, 네가 있어 그 시절이 행복했던 걸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은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아직도 여기 남아 있다, 너는 없는데. 가슴에 뭔가 얹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네가 보고 싶어서 너의 사진을 꺼내지만 사진 속 널 보면 더 숨이 쉬어지지 않아 다시 서랍 속에 넣는다. 아무것도 아닌 나지만 네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는데. 퇴근길이 즐거웠던 이유도, 외출 후 그 좁은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도 너였는데. 떠난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데 슬슬 힘에 부친다. 이럴 때 네 목소리 한 번 들으면 바로 회복될 텐데. 떠나는 마지막까지도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정말 좋은 때에,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자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널 웃으며 추억하고 싶지만 가끔 이렇게 눈물이 난다. 평소 눈물이 없는 나에게도 눈물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가 보구나. 하루에 한 번은 욕심인 거 알고 딱 일주일, 아니 딱 보름에 한 번만이라도 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잠깐, 한 5초만이라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내 글솜씨가 너무나 부족하다. 어찌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고 사랑한다. 내가 20년 넘게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우리가 함께 했던 9년 동안 모두 느끼게 해 준, 아니 떠난 후에도 이렇게 새로운 감정들을 알려주는 이 세상 최고의 고양이! 언제나 너를 아름답게 웃으며 추억할 거지만 가끔 슬픈 마음 숨기고 싶지 않을 땐 이 곡을 들으며 너를 떠올릴게. 같이 듣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책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에서 알게 된 곡이다. 카를 엥엘의 가곡 <조가비(sea-shell)>를 에프렘 짐발리스트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곡이다. 다음은 책의 저자 손열음의 해석이다. "맨 처음 피아노가 시작하는 음은 'F 샤프', 바로 다음 음은 한 옥타브 아래 '자연음 F(파)',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이 두 음을 몇 번 오가던 음들이 곧 바닷물처럼 퍼지며 화음 몇 개로 번진다."

https://youtu.be/yyzhl0ir2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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