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서울 갔다가, 오후에 동대문 쇼핑거리 광장 앞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것참 가관인 것은 길가 높다랗게 가설한 무대 위에서 노랑머리 튀기 같은 젊은이 넷이서 엎어지며 자빠지며 춤을 추는데 어찌 그리 한 몸 같은지 문자 그대로 조화로다. TV에서도 비슷한 것 보긴 했지만, 별 무 재미 하여 채널 돌리기에 바빴는데, 직접 보니 현장감이 나네. 그것참 별것이네. 가관이네. 넋 없이 한참을 보다가 앞뒤를 돌아보니 세 명 정도는 합쳐야 내 나이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 속에 내가 묻혀 있는 것을 보고 문득 머쓱해졌다. 하면, 나는 세 몫인가, 3분의 1 몫인가? 모르는 산수를 셈하다가 “예끼 이놈들아! 그런 것으로 노닥거리는 시간에 공부나 할 것이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선생의 체면을 세웠다. 멀찍이 가다가 뒤돌아보며, “그래, 이왕 가야 할 길이 그 길이라면 그 길로 가서 전문가가 되어라.” 축복하며 개방형 선생으로 변신하였다. 오늘의 삶이 내일에 보탬이 되면 그게 잘 사는 삶이 아닌가, 젊은이들아.
평화시장에서 검은색 하복 한 벌을 샀다. 백화점 일제 세일을 한다기에 이곳저곳 기웃거렸지만, 엄두를 못 내고, 주워들은 정보가 생각나서 이곳에 왔더니만 백화점 세일 가격의 3분의 1 가격에 한 벌을 사겠다. 상표가 No 상표라 맘에 걸렸지만, 옷걸이만 믿고 한 벌 샀다. 옷 가게 주인장 하는 말씀, “입어서 반듯하면 정장이라서 좋고, 행여 틀어지면 캐주얼로 입어서 좋고.” 옳거니, 당신이 전문가로다. 듣던 중 솔직해서 내가 한 벌 사겠소이다.
인근에 있는 어느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 찬물 들락거리며 내 몸뚱아리 유기질 열처리를 충실히 수행한 후에 맥반석 온돌방에 나도 한 마리의 물개가 되어 누웠다. 심심하던 차에 눈앞에 볼거리가 생겼는데, 때밀이 총각이 중늙은이 한 명 뉘어 놓고 코 앞에서 재주를 넘는데, 참으로 가관이라. 이태리타월로 등짝, 가슴팍 이리저리 삭삭 때 미는 것도 리듬이요, 찰싹 두드려 팔다리 벌리는 것도 장단이고, 탁탁 두 번 두드려 훌쩍 돌아눕게 하는 것도 타이밍이라. 허여멀건 물개 몸뚱어리를 손바닥 재주 하나로 제 할 일 척척 해내는 것이, 저 이가 바로 전문가로다.
목욕탕을 나서니 날아갈 것 같다. 정결한 몸에다 검은색 하복 새 양복까지 입었으니, 날개를 단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라. 지하철을 탔다. 수서행으로 갈아탔다. 어떤 장사꾼이 전을 펴기 시작했다. “경남 창원에 자리한 아무개 회사가 독일제 쌍둥이 칼에 필적할 좋은 칼을 만들어 미국으로 유럽으로 수출하다가 예기치 못한 일로 그만 부도가 났습니다. 재고정리 차원에서 큰 칼, 작은 칼, 과일칼 해서 모두 일곱 개에 이렇게 턱도 아닌 값인 단돈 만 원에 모시겠습니다. 품질로 말씀드리면, 여타 회사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섭씨 3,000도에서 한 시간 이상 열처리했기 때문에 쇠를 내리쳐도 날이 무디어지지 않는 그런 제품입니다.” 일곱 개에 만 원이라, 싸기는 싸구먼. 지하철 한 칸에서 예닐곱 명이 사는 것을 보니 장사깨나 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하철 장사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둘째 치고 저 사람 물건 파는 데는 전문가로다. 그런데, ‘예끼 이 사람, 쇠는 1,500도 남짓하면 녹아버리는데 무슨 3,000도에 한 시간인가?’ 생각하며 속으로 웃다가 ‘저이는 아무래도 사이비 전문가로구먼.’ 하고 등급을 매겼다.
병원 영안실에 다시 왔다. 16호실. “친구야, 어이 그리 급해서 그리 먼저 가는가. 어제는 황급 결에 있는 데로 그냥 왔다가, 내 오늘 목욕하고 검정 옷 새로 사 입고 다시 왔네. 젊은 날, 한 십 년 함께 지내다가 그 후로 갈 길 달리 걸었지만. 친구야 그래도 나는 자네를 꽤나 많이 아는 편이네. ‘한번 만나면 영원한 지인(知人)’으로 만드는 지남철 같은 능력을 갖춘 자네. 한 오십 년 살고 나니 남한 천지에 연줄 아니 닿는 곳이 없는 자네 아닌가. 내가 늘 부러워하던 자네의 능력이라네. 나의 일, 남의 일에 구별이 분명치 않던 자네, 그래서 자네를 친구 삼으면 덤이 많아 좋았는데… 이왕 나선 길, 잘 가시게. 자네는 참으로 전문가였네,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의 전문가였네.”
미국에 살고 있던 이 친구의 부인과 자식들이 막 도착하였다. 울고, 혼절하고, 또 울고, 혼절하고… 얼굴이라도 보겠다기에 시신 보관실로 함께 갔는데, 제복을 입은 젊은 여인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섬뜩할 줄 알았는데, 친구가 누운 곳이라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시신을 움직이는 담당 직원을 나는 유심히 보았다. 그이는 아름다웠다. 모습이 아름다웠다. ‘세상에 직업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하나.’ 하는 나의 이전 생각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이는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해 주는 귀한 능력의 전문가였다. 조용히 서랍장을 끌어낸다. 그 안에 있는 내 친구, 영혼은 이왕 떠나고 없는 육신만의 몸이지만, 얼굴이 깨끗하고 평안하다. 보는 이 마음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려고, 정성껏 단장하여 눕혀 놓고, 그 옆에 다소곳이 서 있는 저 이, 하얀 장갑 낀 두 손 정갈히 앞으로 모으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서는 법을 아는 저 이. 귀한 전문가로다.
전문가라, 전문가 세상이라. 세상 누구도 일없이 왔다가 일없이 가는 이는 없으리라. 다들 어떤 뜻이 있어 이 세상에 오게 되었고, 그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옳은 길이겠지. 그 길을 힘 바쳐 살아가는 자 – 모두가 전문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