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발사이다. 그런데 나의 단골들은 나에게로 오지 못한다. 내가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붙박이 단골들의 이발사이다. 나의 단골들을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삼백은 넘고 사백 가까이 될 듯하다. 단골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 내게 어떻게 해 줄 것을 전하려 해도 소리를 내지 못하니 그 뜻을 내 귀로는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표정이나 안색으로 형용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그 전하려는 뜻을 짐작할 뿐이다. 해가 지날수록 나도 요령이 쌓여서 단골들의 표정이나 안색으로 그 전하려는 뜻을 알아차리는 눈 기술이 늘었다. 깎고 다듬어 주는 것은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손길 닿는 대로 하는 것이지만, 말 못 하는 친구들의 표정이나 안색을 헤아려, 되도록 내 손길에 참고하는 편이다. 나는 나의 이런 재주를 “눈으로 듣는다”고 말을 지었다.
이제, 내가 칭하는 “이발사”를 정의한다. 이발사의 한자 표기는 理髮師이다. 여기에서 師(사)는 우리에게 어떤 고귀한 일을 해 주는 사람에게 쓴다는데, 나에게는 이 글자가 턱없이 과분한지라, 전문적이거나 기능적인 직업의 의미로 주로 쓴다는 士(사)를 쓰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理髮士(이발사)라 칭한다. 그런데, 髮(발)이 무엇인가? 머리털 외에 초목이라는 뜻도 있다. 그런 즉 나는 나를 “이발사(理髮士): 초목을 다스리는 일꾼”이라 부른다.
나, 이발사는, 손은 초록을 깎고, 마음은 초록을 생각한다. 손은 초록으로 모양을 만들고, 마음은 초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자네들, 모두 함께 초록이어서 좋다. 봄으로, 여름으로, 초록으로 넘쳐흘러서 좋다. 초록으로 동색이어서 좋다. 그 속에서도 가만가만히 서로 다른 초록이어서 좋다. 서로가 초록이어서 같고, 서로가 다른 초록이어서 다르고. 백이면 백의 색이 되고, 또 백이 모여 동색이 되는 너희 초록이 좋다.”
데니스톤 집의 뒷마당은 공기가 특별히 상쾌하다. 화초와 수목이 모양 갖추어서 우거져 있고, 찻길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새 소리 풀벌레 소리. 행여 지난밤에 비라도 왔다 하면, 잎에 맺힌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뒷마당에는 마흔 걸음쯤 되는 흙길이 완만하게 기울어져 살짝 굽어 도는데, 폭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만큼 넓다. 몇 해 전에 한 뼘 남짓 되는 회양목 묘목을 예순여 그루 사다가 양옆으로 나란히 줄 세워 심은 것이 이제는 제법 컸다. 자주 이발하여 둥글게 키웠더니만, 큰놈은 이제 농구공만큼 크고, 작은놈은 축구공만 하게 둥글다. 지난번 이발한 지가 스무날쯤 되었나? 연초록의 새잎들이 빽빽하게 난 것이 생기롭게 탐스럽다. 회양목은 둥글게 깎아야 제격이다. 잎 하나하나가 둥그스름한 것이 어른 새끼손가락 손톱만 하게 도톰한데, 요것들이 빡빡하게 붙어서 둥근 공 모양을 하고 있으면 그 양태가 그리 사랑스럽다.
맨땅을 맨발로 걸으면 좋다는 소리를 듣고, 한 달포쯤 전부터 이 흙길을 아침저녁으로 맨발로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그래서 길 따라 늘어선 회양목들과 각별히 친해졌다. 나의 데니스톤 집 온 정원에 둥글게 이발하여 키우는 회양목이 수백 그루는 되지만, 다른 것들은 주변의 화초와 수목과 함께 자라면서 둥근 모양으로 어울려 살고, 그래서 나와의 인연은 간혹 둥글게 손질해 주는 정도이고, 통상은 거리를 두고 보며 정원의 조화를 즐기는 편이지만, 이 흙길에 나란히 줄지어 자라는 놈들은 하루에도 몇백 번 나와 마주치니, 정감 가는 것이 아무래도 다르다.
흙길을 걸으면서 회양목들과 한 놈 한 놈 눈을 맞춘다. 이놈들은 생기가 넘치는 연초록으로 자기들의 바깥 피부를 둘러싼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나같이 연한 초록으로 둥글둥글하게 단장을 한다. 짙은 초록은 안으로 덮어서 감추고 바깥 피부는 언제나 연초록으로 가꾼다. 덩치가 커 가면서 언젠가는 자기들도 짙은 초록이 되어 밑으로 숨겨지겠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연초록이다. 이 초록 잎들은 찬찬히 숨을 쉰다. 햇빛이 밝은 날이면 더더욱 숨소리가 큰데 이들의 신명에 찬 소리를 나는 눈으로 듣는다. 그래도 간혹 신명이 덜한 놈들이 보인다. 오늘은, 내려가는 방향으로 보아서 오른쪽 일곱 번째, 여덟 번째 두 놈이 표정이 어둡다. 연초록이 생기가 덜하고 피부를 제대로 둘러 덮지를 못하여 군데군데 짙은 녹색이 확연하다. 연전에 사다 심은 뒤편의 무화과나무가 허리춤만큼 키가 커서 그늘을 지우는가 보다. 그래, 무화과나무 아랫도리를 손질해서 가렸던 빛 길을 틔워 주마. 무화과나무도 군살 덜어내게 되어 좋아할 것이야.
나의 사랑하는 초록들은 공기 속의 탄산가스를 들숨으로 들인다. 그리고 날숨으로 산소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뒷마당의 산소는 초록들이 방금 내어놓은 싱싱한 것이라서 더욱 싱그러운가 보다. 아침저녁으로 맨발 걷기를 하면서 이들이 날숨으로 내어놓는 산소를 나는 들숨으로 들이쉰다. 그리고 내 몸에서 나오는 탄산가스를 날숨으로 내어 쉰다. 내 몸에서 나온 날숨의 탄산가스는 가까이 줄 서 있는 회양목의 들숨으로 들어가고, 회양목에서 날숨으로 나온 산소가 내 몸속으로 들숨으로 들어오고… 들숨으로 날숨으로, 날숨으로 들숨으로… 그리되는구나, 나의 숨이 너희에게로 가서 초록이 되고, 너희 숨이 내게로 와서 온기가 되고. 그래, 우리는 숨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자연이다. 유레카(Eureka)! 우리는 함께 자연이다.
내일은 모두 단정하게 머리 손질을 하여 주마. 한 놈 한 놈 어루만지며 모양을 내어 주마. 나와 함께 들숨 날숨 나누며 더 깊은 인연을 엮으면서 날마다 자연이 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