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면서

by 이해건

“서울 가는 십이 열차에…”가 유행할 적에는 부산에서 서울 가는 길이 열두시간 좋게 걸렸었는데, 그 새 세월이 좋아져서 지금은 호주까지도 12시간 남짓이면 다닌다. 이제는 호주에서 서울 가는 길이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게끔 되었다.


일전에 호주의 타역에서 사는 분이 한국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오랜만에 들렸기에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다. 이분은 사업 관계로 한국과 호주를 대충 반반 갈라서 사는 형편인데, 골프를 아주 좋아하여서,


“이형, 골프 많이 치라고. 칠수록 남는 게야. 한국에서는 얼마나 비싼지 몰라. 부킹하기도 어렵지만 한번 나가면 못써도 2~30만 원은 좋게 나가거든. 그보다 더 나갔으면 더 나갔지. 이곳하고 값 차이가 얼마인가. 그저 여남은 번만 치면 한국 가는 비행기 삵이 빠지잖나.”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 이분 저분에게서 여러 번 들었어요. 호주에 근무하다 본국으로 귀임한 분들은 호주에서 골프 실컷 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더랍니다. 건강에 좋고 시간 잘 가는 것이 골프에 비할 것이 어디 있나요. 그런데, 이재에 둔한 저는 산수가 모자라서 그런지, 글쎄 한국 가는 비행기 삯은커녕 칠수록 주머니가 비던데요.


“이형, 골프는 말이야 룰이 골 백 가지가 넘는데, 잘 안되는 날에는 핑계가 또 골 백 가지가 넘거든. 이놈의 공이 꼭 내 기분을 아는 것 같아. 전날 술이라도 좀 과했거나 잠이라도 설친 날은 영락없이 언덕으로, 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거야. 그래도 말일세, 어쩌다 공이 죽죽 뻗어 줄 때는 정말 기분도 따라서 날아간다네. 사는 게 다 뭔가, 이런 재미이지.”

그럼요. 온통 초록으로 펼쳐져 있는 넓은 잔디를 따라 내가 친 공이 하얀 점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말고요. 사는 맛이 다 여기서 나는 것 같답니다. 그런데, 바둑 두는 친구와 이야기 해 보면, 인생의 깊고 오묘한 섭리가 거기 바둑판 위에 있다고 하던데요. 무궁한 수순과 변화무쌍한 진전이 과히 인생과 비교할 수 있답니다. 낚시꾼 친구는 또 낚시 속에서 삶의 희열이 짜릿한 전율같이 온다던데요.


“이형, 골프야말로 인생살이에 비유할 만하지 않은가. 티샷이 잘 나갔다 싶으면, 그 다음이 옆길로 빠지고, 한 홀이 제대로 되었다 싶으면 다음에서 죽 쑤고. 그래 18홀 모두가 평탄하게 잘나간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어야지 말일세. 사람 사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옳은 말씀입니다. 구절양장으로 굽이굽이 도는 것이 인생이랬지 않습니까. 햇빛인가 하면 구름이 오고, 마른 땅인가 하면 진창으로 들어가고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골프와 흡사하네요. 포기하지 말아야지요. 인생만사 세용지마라 하지 않았습니까. 좋은 일 생겨도 너무 좋아할 것도 없고, 슬픈 일 생겨도 너무 슬퍼할 것도 없고. 되어가고 돌아가는 것이 다 섭리랍니다. 성경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랬습니다. 비록 길이 험하여 찾는 이가 적더라도 그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이형, 골프가 말이야, 교제하는 데는 그저 그만이야. 우리처럼 이렇게 함께 걸으면서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다가 사업 이야기 슬쩍 곁들이면 안성맞춤이라네. 술로 접대하는 것보다야 백 번 났지. 나는 직원들 보고 다 골프 치라고 그랬구먼. 돈 두고 뭘 하나. 더 큰 돈 벌려면 투자가 있어야 해. 부지런히 골프 배워두면 우선은 돈이 좀 들겠지만, 나중 제대로 교제하게 되면야 회사에서 인정받고 더 출세해서 더 큰 돈 벌지 않겠나.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길이지.”

형님 말씀이 구구절절이 옳습니다.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내노라하는 사람들은 대충 골프를 친다더군요. 안 좋으면 치겠습니까. 몇 해 전 노사분규가 한창일 때도 어느 공장 책임자는 비상 연락용 무언가를 바지춤에 차고 골프 치러 가더군요. 교제 때문이라던데요. 직원들도 골프를 칠 수 있다면야 오죽 좋으라고요. 회사의 전체가 교제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형님, 골프가 어디 한두 푼 드는 운동이래야지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형님, 이런 이야기 들어 보신 적 있으시죠.


성 밖이 시끌시끌하기에 임금님이 물었다.

“왜 이리 소란한고?”

“죽 끓여 먹을 쌀도 없어서 백성들이 아우성입니다.”

“미련한 것들, 쌀이 없으면 고기로 죽을 끓이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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