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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11. 2020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지독한 세월 뒤에 찾아온 아름다움



"누구에게나 지독한 한 시절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지독함도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에 아름답게 변하곤 한다.


50년을 뛰어넘은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p. 135



 저자의 병원에 교통사고 환자가 급하게 구급차에 실려온다. 온몸이 처참하게 부서진 이 환자는 고령의 할아버지였다. 함께 온 보호자로 보이는 할머니는 흐느끼며 말한다. "이제 만난 지 두 달 되었는데...."


사연인즉 일제시대 강제 징용으로 혼인한 지 수개월 만에 생이별을 하고 50년 세월을 서로를 그리워하며 할아버지는 러시아 사할린에서 할머니는 고향땅에서 억만 겁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버티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tv프로그램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 여생을 해로하나 싶더니 그것도 2달 만에 할아버지가 그만 횡단보도에서 달리던 차에 치여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힘든 치료를 거듭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저자의 글처럼 지독한 그 시절을 다 견디고 짧은 두 어른의 사랑의 시간이 비록 슬프게 이별했지만 아름답게 보였다. 


부부의 인연이 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라 본다. 하지만 살고 말고 하는 둘만의 사연이 있으니 이혼이라는 결정도 쉽지 않게 내리는 것이 현시대의 부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어쩌고 하는 주례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평생 해로 하자며 시작한 인연인데 칼로 물 베듯 깔끔하게 정리되기도 한다.


구조대 생활을 하며 사고현장에서 내가 본 몇 번의  부부의 모습 책의 사연과는 달랐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손목을 그어버리는 아내, 부부 싸움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강물에 뛰어든 남편,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를 물속으로 밀어버리는 남편...


시작은 아름다웠을 부부라는 인연이 삶에 있어서는 비극으로 변해버린 이유를 알수가 없다.


집안일이라 간섭할 일이 아니라 타박하지만 세상 사람 다 등 돌려도 내 사람 하나만큼은 남는 게 그래도 부부인데 이러저러한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면 오늘 읽은 이 내용이 더욱 가슴 시린다.


사연없는 삶이 어딨으며, 곡절없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지독한 시절을 견뎌 생의 끝에 함께 있을 때 그땐 서로가 너무 고맙고 아름답지 않을까...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거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최석우 시인 "가슴에 묻지 못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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