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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26. 2020

화마에 휩싸인 작은 생명들

119의 동물구조

“우리 아이들이 안에 있어요!!!

  빨리 구해 주세요!!!"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가게 문 앞에서 울부짖듯 절규하며 한 여인이 소리치고 있었다. 불길은 옆 가게로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었고 연기는 밤하늘로 치솟았다. 지체할 것 없이 우리 팀은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서슴없이 걸어들어갔다. 아이들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방서 근무지인 부산진 소방서 구조대는 부산의 중심지 서면에 위치해 있다. 서면 로터리를 중심으로 시청 방향으로 올라가면 송상현 동상이 나온다. 지금은 인근이 광장으로 개발되었지만 내가 근무하던 2008년 즈음에는 인근에 애완견을 분양하는 애견카페나 관련 용품점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 앞서 여인이 외친 '우리 아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애완견을 말하는 것이었다.


불길은 거셌다. 애완견 숍의 정문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화재진압팀이 화점을 찾아 먼저 진입하여 대량의 물을 방수하고 있었다. 불길이 조금씩 잡혀가며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피해 우리 구조팀은 낮은 자세로 내부를 수색해 들어갔다. 이때 베테랑 구조 반장 선배가 나에게 외쳤다.


"우린 나가서 뒤쪽으로 진입하자!!!"


 그 선배는 예전에 이 가게의 뒷골목 쪽으로 출동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뒷문 출입구가 있던 것을 기억하고 그쪽으로 진입하여 가게 깊숙이 있는 '아이들'을 구조하자는 계획이었다. 팀장님에게 보고 하고 둘은 정문을 빠져나와 빠르게 뒷골목으로 뛰어갔다. 뒷문 쪽은 화세(火勢 : the force of the fire)가 앞쪽보다 약했다. 허술해 보이는 뒤쪽 철문의 문고리를 구조용 도끼로 파괴했다.


하지만 선뜻 문을 개방해서는 안 된다.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하여 훈소상태(燻燒狀態)에 있는 실내에 산소가 갑자기 다량 공급될 때 연소가스가 순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인 '백 드래프트(역류)'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철문의 문고리를 내가 먼저 파괴한 후 선배는 열기와 연기를 재차 확인하고 조심히 문을 개방했다.


다행히 백드래프트는 없었다. 검은 연기가 마치 물을 부어내듯 뿜어 나오긴 했지만 허리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내부는 눈으로 확인 가능했다. 뒤쪽까지는 화세가 미치지 않은 듯했다. 선배와 나는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자 내부로 진입했다. 조금 들어가자 우측에서 화재진압팀이 여전히 강력한 직사 방수로 불길을 잡고 있었다. 같은 소방관인 내가 보기에도 화재현장에서의 진압팀의 모습은 경이롭다. 시뻘건 불과 사투를 벌이는 그들은 관창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들고 혼자서는 지탱하기도 힘든 엄청난 호스의 수압을 견디며 불을 잡고 있었다. 경외감을 불러을킬만한 모습이었다.





진압팀의 모습에 반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반대쪽 방에서는 '아이들'이 짓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불길이 번지지 않았지만 연기가 꽉 차서 앞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위험했다. 인간과 같은 포유동물이니 숨 쉬는 기관이 연기에 질식된다면 살아나기 힘들듯했다. 선배와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작은 아크릴 관 같은 곳에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앉아 울부짖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철제 케이지 안에서 앞다리를 세운 채 우리를 보고 짓고 있었다. 눈은 애처로웠고 몸부림은 처절했다. 어느 녀석부터 구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앞뒤 가릴 거 없이 마구 끄집어 냈다. 가슴팍에 서너 마리씩 안고 들어왔던 뒷문으로 달려 나갔다. 나와서 보니 이 녀석들이 혓바닥을 축 늘어뜨린 채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살았다고 안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한 연기 탓인지 몸이 흐느적거렸다.


근처의 구경꾼(불난 곳에는 늘 구경꾼이 있다)에게 잠시 아이들을 맡기고 다시 내부로 들어갔다. 역시 몇 마리 들쳐안고 나오는데 마음이 급했다. 가게 안에는 작디작은 강아지들은 많았고 연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구조 속도를 높여야 했다. 순간 생각했다. 강아지들을 문밖으로 던지기로 했다. 강아지들이 있는 방에서 우측으로 몸만 돌리면 수 미터 앞에 뒷문 출입구가 보였고 그 출입구 바깥으로 가볍게 던진다면 구조 속도가 더 빠를 듯했다.


선배는 두 손으로 한 번에 서너 마리씩 잡아서 나에게 패스(?) 했다. 나는 그렇게 받은 강아지들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문밖으로 던졌다. 동물의 운동신경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 작은 강아지였지만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기특했다. 그렇게 던져 구하기를 몇 번 반복하자 내부에 생명체는 모두 밖으로 빼낸 듯 보였다.


화세는 모두 진압됐고 잔화(남은 불) 정리를 하기 위해 가게 전체를 수색했다. 혹여 구하지 못한 강아지는 없는지 다른 위험요소는 없는지... 잔화정리는 불을 끄는 작업만큼 중요한 작업이다.


안타깝게도 구하지 못한 강아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카맣게 타버린 강아지 사체들이 보였는데 아직 몸은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산목숨이었는데 그렇게 죽어버린 모습을 보니 마치 사람이 그렇게 된 듯 보여 한참 동안 마음이 좋지 못했다.


불은 인근 세 군데의 가게를 모두 태워버리고 진압되었다. 화재조사팀에서 원인을 밝히겠지만 구조대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여기저기 가게 주인들이 타버린 아이들의 몸을 부여잡고 우는 모습이 보였다. 철철 흐르는 눈물을 보니 마치 자식이 죽은 듯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나마 우리 구조팀이 진입했던 곳의 강아지들은 서너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구조했다. 던지기 구조(?)가 빛을 발한 듯하여 괜스레 뿌듯했다. 팀장님은 무덤덤하게 뒤 수습을 화재진압팀에게 맡기고 우리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구조대는 화재뿐만 아니라 다른 출동이 많기 때문에 화재현장의 구조 업무가 마무리되면 통상적으로 철수하고 다른 출동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구조 대원이 되고 참으로 많은 동물구조를 갔다. 강아지, 고양이, 고라니, 뱀, 도마뱀(신고자는 이구아나라고 했다), 앵무새, 스컹크, 멧돼지... 어떤 동물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포획하기도 했고, 어떤 동물은 사람과 같이 함께 사는 애완동물이기에 주인에게 인계하기도 했다.


뭐가 됐든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은 인간보다 뛰어나기에 구조현장에서는 사람 못지않게 놀라고 긴장한다.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는 지시를 따라 협조하겠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다. 이래저래 구조에 성공하고 나면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로 교감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된 것이다. 나도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외동딸이 외로울까 얼마 전에 한 마리 분양받았는데 딸아이보다 오히려 내가 더 좋아하고 위로받는다. 요리조리 쫓아다니며 데리고 놓는 재미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고귀하다. 보호받아 마땅하고 위험에서 구해내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동물도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요즘 같은 뜨거운 여름철. 내가 사는 부산에 있는 해수욕장에는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애완견, 애완묘들이 많이 발견된다.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평생을 아낄 듯 데리고 살던 동물들을 키우기 버겁다고 분주함을 틈탄 여름철 해수욕장에 슬쩍 놔두고 가는 것이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엄연히 심장이 뛰고 피와 살이 있으며 자기를 거두어 준 사람을 아낌없이 따르는 동물을 못난 이기심에 물건 버리듯 버리는 인간들이 참으로 밉다. 동물을 껴안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친자식 자랑하듯 하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스리슬쩍 놔두고 가버리는 인간들을 진심으로 경멸한다.


10여 년 전 부산의 양정동 송상현 동상 옆 애견카페 거리에서 타죽어 가는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내 목숨 내놓고 그 불길 속을 뛰어든 이유는 대단한 사명감과 직업의식이 있어라기보다 그곳에 살아 숨 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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