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된거다
어릴 적 태권도 학원 갔다 오는 길이었다. 태권도 학원차가 동네 앞 큰길에 나랑 함께 간 서너 명의 친구들을 내려 주고 갔다. 그러면 우린 뭐랄 것도 없이 도로를 냅다 건너 집까지 뛰어 가는 게 마치 놀이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도'봉고'차에서 내리자마자 큰 도로를 건너려고 친구들과 요이땅을 했는데 지축을 흔드는듯한 자동차 경적소리와 타이어가 찢어질듯한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나와 내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마침 동네 어귀에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들이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보셨고, 우리는 온갖 쌍욕을 하며 가버리는 트럭 운전수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총총걸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저녁 밥상머리 앞에서 내 귀 통수를 서너 대 갈기시며 뒤지려면 뭔 짓을 못하냐며 한 번만 더 신작로를 그딴 식으로 건너다간 태권도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라 하시며 일갈하셨다. 그날 난 나를 칠 뻔한 트럭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다. 그렇게 난 도로를 건널 땐 좌우를 살피라는 아름다운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부엌에 가스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봤다. 불만 보면 본능적으로 흥분하는 소방관이 아니던가. 얼른 끄고 아내에게 다 태워 먹으려고 환장했냐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아내는 차분했다.
"아무 일도 없었잖아"
아. 이런. 이게 아닌데.
잘못한 행동은 꾸짖어서 발라야 하는데(바로잡아야 한다는 경상도 사투리).
더 이상 아무 말 못 하고 쩝 하고 돌아서서 이 글을 쓴다.
고부갈등을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당장이라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왜 그때 나를 두들겨 패가며 혼냈는지 묻고 싶었다. 아.무.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한들 행위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후의 문제다.
괜찮다는 것을 먼저 말하자. 아무 일 없었다고. 그러고 나서 그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타이르자.
이게 맞다. 그러면 된거다.
불나서 불 끄러 가면 불부터 끄지 불낸 놈 찾지는 않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