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연애의 사이
"영화처럼 운명 같은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 결혼하고 싶을 때 만나는 사람이 너 짝인 거야"
조금은 건조하고 낭만이라고는 1도 없는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다.
내가 결혼할 사람은 운명처럼 나타날 거라 생각했었고, 가능한 늦게 결혼을 하고 싶었다.
30대 초반의 나는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 여자에 정착해서 결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던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청년이었다.
운명의 짝을 만날 것이라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무더웠던 한 여름의 저녁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와의 첫 만남은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을의 서늘한 공기로 바뀌기 시작하는 늦여름 날이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끊임없이 웃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끊기지 않았고, 유머 코드가 비슷해서 남들은 전혀 웃지 않을 만한 포인트에 자지러듯이 웃곤 했다. 아내의 첫인상은 우아한 기품이 있었고,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는 내 마음을 따뜻하고, 뭉클뭉클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새벽 3시까지 전화통화를 하고 잠이 들곤 했다. 내 인생의 여름 중 가장 뜨겁고 찬란했던 시간이었다.
연애를 한 지 1년이 지나,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깊이 빠져있었지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기에 결혼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었다.
아내는 연애로 끝나는 사이가 아니라, 결혼으로 단단하게 이어지는 관계를 원했었고 나는 아내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속으로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때가 되면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헤어지기 싫지만, 결혼이라는 게 나랑 잘 맞을까?'
당시의 내 속마음이었다.
결혼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나의 행복과 자유가 중요시되는 시대에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의 되었고, 결혼이라는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지 못할 때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헤어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가?'
특히 어떤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싶을지 생각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눈이 너무 높아서 결혼을 못 가는 노총각, 노처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나 역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만한 완벽한 왕자님, 공주님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점들을 생각해보자. 꿀팁을 주자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종이에 적어보길 권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보다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종이에 한 가지씩 적어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 지 더 명료해지고 확실해질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장 중요한 것부터 덜 중요한 것까지 적어보자. 내가 적은 게 30가지 정도 된다면 그중에서 10개만 맞는 사람이라면 내 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내에 대한 내 마음에는 확신이 있었고,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 중에 대부분을 아내가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연애'에서 '결혼'이라는 관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의 내 리스트 중 기억나는 것들만 적어본다.
1.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여자
2. 내 눈에 예쁜 여자
3.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
4. 함께 있으면 즐거운 여자
5. 경제적으로 자립되어 있는 여자
6. 인내심이 있고 나를 존중해주는 여자
7. 인생의 가치관이 비슷한 여자
8.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
9.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할 줄 아는 여자
10. 우리 가족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여자
정신이 맑고 집중이 잘 되는 때에 책상에 앉아 종이에 적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