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터부(Taboo) 시 하는 조직에 변화는 없다
오늘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을 꼽으라면 당신은 누구를 떠올릴 것인가? 40대를 갓 넘긴 나에게 누군가 이 질문을 해 온다면, 필자는 거침없이 'BTS'라는 이름을 대답할 것이다. 방탄소년단! 이들에 대한 수도 없는 칭찬과 갈채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무어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이들을 키워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 자리에 섰다. 자신이 졸업한 모교에 찾아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전한 메시지에는 우리가 곱씹어 볼만한 구석들이 많다.
우선 몇 가지를 직접 가져와 본다.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가 말한 자신의 업적과 성공의 원천은 '분노'와 '불평'이었다. 적당한 타협과 관습에 대한 무저항을 용납하지 않은 불평과 분노가 지금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방탄소년단을 탁월함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설명을 더했다.
혁신과 변화를 이끈 그의 앞에 놓인 단어가 분노와 불평이라는 점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란 듯하다. 언제나 혁신은 무엇인가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변화 과정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자 하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또, 불평과 불만이 가지고 있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이 성공한 뮤지션, 나아가 대성한 사업가의 입에서 나온 장면을 어색해 한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더군다나 그 자리는 졸업식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 아니던가.
자신을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일 뿐 아니라 음악 프로듀서로 소개한 방시혁 대표의 인사말은 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영의 주체일 뿐 아니라 현업의 일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땅에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직접 경험한 구조적, 사회적, 관습적인 불합리들이 그의 눈에 얼마나 가시처럼 다가왔을지 공감이 일었다.
말하고 싶은 주제로 돌아가자. 조직이 혁신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간혹 이런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운신의 폭을 좁히는 의사결정들을 맞이할 때면, 그 의사결정에 대한 대한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과연 확실한 이득과 손실을 따져보았는지, 갈등은 그저 무조건 피해야 할 사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를 묻고 싶다.
갈등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진 한자어이다. 본래 각자가 가진 천성에 의해 서로를 고사시키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첨예한 대립 상황을 묘사하는 뜻이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특성이,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특성이 있는 덩굴 식물 이기에 이들이 함께 만나 얽히고설키기 시작하면 서로를 죽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묘사한 단어이기도 하다.
끔찍하기 짝이 없지만, 앞에서 말한 불평과 불만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기존의 관습과 루틴에 전면적인 반대의견, 즉 악마의 옹호자(Devil's Advocate)를 등장시키는 것은 혁신과 성장에 영양분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갈등의 끝이 모두 비극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무작정 갈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특히 민감한 다이내믹스를 가지고 있거나, 복잡 다단한 감정 관계가 얽혀있는 조직에서 리더들이 여러 잡음들에 지쳐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면 혁신과 변화는 소원하다.
감정싸움이 아닌 논리와 근거에 입각한 갈등이 자리잡기 위해 이를 보다 성숙하게 바라보는 조직과 리더의 태도는 혁신의 기틀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정치와 감정으로 온정주의와 '좋은 게 좋다'는 분위기를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날카로운 변화의 에너지를 놓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키워낸 대표가 말한 그의 에너지 원이 화(火)와 분노라는 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똑같은 잣대를 회사로 투영하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조직 안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존 프로세스와 관습에 분노하는 구성원을 당신은 어떻게 바라볼 것 인지 묻고 싶다.
당신은 그를 그저 조직 부적응자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혁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